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뒤돌아보니, 남겨진 것은 코로나뿐인 것 같다. 오랜 시간 계속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우울증이 심각한 수준이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심리방역도 시급하지만 무엇보다 일상에서 서로의 마음을 위무하고, 마음의 강건함을 유지할 수 있는 촉매제가 절실하다. 문화예술이 그런 역할들을 해낼 수 있는 촉매제가 된다는 점에선 크게 이의가 없을 것이다.
문화예술 영역 중에서도 전통적으로 문학이 인간에게 전달하는 공감력은 크다. 영상시대가 열리면서 문학의 기능이 위축되고는 있지만, 그 기능이 완전히 사라질 수도 없으며 사라지게 해서도 안 된다. 모든 문화콘텐츠의 기본은 문학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코로나로 고통받았던 올해, 부산의 지역문학은 얼마나 문학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며 코로나에 지친 이들의 마음을 위무해주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부산지역에서 발간되는 제법 많은 수의 문예지들에서는 올 한해 코로나와 문학적 대응이란 특집 주제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오늘의 문예비평’에서 문학적 담론을 제기할 정도였다. 전대미문의 재난이 문인들의 깨어있는 의식마저 무화시켜 버린 걸까? 그래도 부산의 시인들이 코로나로 고통받는 시민에게 시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선사하고자 시화전을 열었다. 그나마 그것이 시민과 작품이 함께 만나는 유일하게 ‘열린’ 공간이었다.
시화전은 평화공원 옆 대연 수목원과 해운대 미포 해변열차 근처 산책로에서 펼쳐졌다. 대연 수목원 시화전에는 44편의 시가, 해운대 미포에는 70편의 시가 시민에게 소개되었다. 문제는 시인들의 작품이 지역주민과 부산 시민에게 얼마나 친화력 있게, 코로나로 상처받은 이들에게 공감력을 불러일으켰느냐 하는 점이다. 대연 수목원에 걸린 시 44편 중 코로나가 소재가 된 작품은 단 1편이었으며, 이에 비해 해운대 미포 해변 산책로에 걸린 시편은 과반수가 넘는 작품이 코로나를 소재로 다루었다. 전자의 시화전에서는 작품 수만 보더라도 코로나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시민을 위로한다는 구호가 무색하리만큼 기획력의 부재를 드러냈다.
시를 감상하는 시민의 입장에서는 시편의 수도 문제가 되겠지만, 작품 하나하나가 어떻게 지금의 상황을 위로할 것인가 하는, 시적 공감력이 더 중요하다. 이번 시화전에 선보인 작품들을 몇 차례 살펴본 결과, 극소수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공감력도 감동도 미미했다. 시민의 답답하고 막힌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줄 수 있는 시 한 편을 아쉬워해야 하는 것이 지금의 상황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훈아의 ‘테스형’에 다가설 수 있는 시 한 편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조소 섞인 유머도 들린다.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근원적인 연유는 무엇일까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안과 관련해선 여러 가지 방향에서 논의될 수 있겠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치열한 시정신의 부재가 가장 큰 이유인 듯하다. 시인의 손을 떠난 시 한 편엔 시인이 쏟았던 시간만큼 시인의 모든 것이 시에 담겨야 한다. 소위 혼신을 다한다는 표현처럼 자신의 전부를 쏟아붓는 시작행위가 필요하다. 작가는 떠나도 오롯이 이 세상에 남겨질 한 편의 시에 나를 걸어보겠다는 자의식의 발동이 시작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는 나로부터 출발했으나 나를 관통해서 타인의 몸으로 전달되는 공감의 과정이기도 하다. 자신을 매혹시키지 못하는 작품은 남을 감동시키기도 어렵다. 자신도 타인도 움직이지 못하는 시를 세상에 내보여서는 안 된다. 감동적인 시 한 편을 위해 깊은 고뇌와 아픔의 긴 터널을 통과했을 전대의 시인들을 생각하면, 짧은 시 한 편이지만 기꺼이 잠 못 이루는 밤들이 필요하다. 잘 빚어진 항아리는 수천 도의 가마 불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코로나의 재난은 우리에게 분명 위기이다. 그러나 이 위기의 시간이 문학하는 이들에게는 또 다른 기회와 성장의 시간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이 인류 보편의 경험을 모두가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는 문학적 세계로 창조해 내느냐 하는 점이다. 이를 부산지역의 문학인들에게 기대해 보는 것은 무리일까?
부경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