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입원한 요양병원에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직원 한 명이 코로나 양성판정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긴급 안내’라는 제목이 붙은 문자를 읽으며 내 마음속 심지가 툭, 꺾이는 소리를 들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엄마를 1년 가까이 보지 못했다. 괴로운 뉴스가 쏟아지는 날에는 가족에게 일어날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곤 했다. 그래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마음의 심지를 다독여 세웠다. ‘그래도 뭔가 할 수 있겠지, 희망이 생기겠지, 더 나아지겠지.’ 언젠가 환하게 불을 붙이겠다, 생각하던 긍정의 심지였다.

아직 엄마가 있는 병동은 폐쇄되지 않았으니 다른 병원으로 옮길까. 하지만 하필 지금은 추운 계절이고 엄마는 폐렴이 쉽게 오는데 다른 병원에 옮기는 과정에서 몸이 아프게 되면 어쩌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 일단 좀 더 지켜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개인의 힘으로 손쓸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심지가 꺾였고 무능하고 무력한 날들이 이어졌다. 우울감이 찾아왔다. ‘코로나 블루’가 이런 것인가, 싶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고 도서관에서 진행하던 대면 글쓰기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됐다. 한 수강생이 글 올리는 게시판 찾기가 어렵다며 호소했다. 나는 휴대폰 접속 과정 페이지를 캡처해 문자로 보내 알렸는데 잘 따라오다가 본인인증에서 막혔다.

휴대폰 명의가 자녀 명의라서 아이핀 인증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엄청 높은 산이었다. 이분은 글쓰기를 포기하시겠구나, 생각하고 접으려는데 4시간 뒤 장문의 문자가 왔다. 아이핀 인증에서 막힌 수강생이 문자메시지로 글을 적어 보낸 것이다. 한글 프로그램에 옮기니 자그마치 원고지 기준 14매의 분량이었다. 무엇이든 해보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방법을 찾게 된다. 나는 잃어버린 긍정의 심지 자리를 더듬어 찾기 시작했다.

성탄절 오전에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단톡방에 안부 인사를 넣었다. 친구들은 아이들의 성탄절 사진을 올렸다. 12월의 ‘선행 기간(?)’ 동안 어린이들은 착한 일을 했다. 어린이1은 이브 저녁 케이크 앞에서도 ‘콩순이’를 보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다행히 기도는 닿았고 어린이1은 선물을 확인했다. 어린이2는 선물을 확인한 뒤, 베란다 창 너머로 ‘고맙습니다!’며 어딘가에서 듣고 있을 산타를 향해 인사했다.

어린이 3, 4, 5가 있는 집은 공교롭게도 어린이3의 선물만 도착했다. 친구는 4와 5에게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이 좀 늦는다’는 편지가 왔다고 알려줬지만, 어린이들은 ‘입이 댓 발’ 나온 상태로 아무래도 산타할아버지는 없는 것 같다며 비관했다. 하지만 ‘자꾸 너희끼리 싸우면 선물 와도 반품시킬 거’라는 엄마의 말에 황급히 태도를 바꿔 순해지는 것을 보면 산타를 믿는 눈치다.

‘산타할아버지 한국에 들어와서 2주 자가격리 중이니, 1월 9일에 오실 거’라던 농담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아직 우리에게는 착한 일을 할 시간이 남아있다는 뜻이겠네. 농담을 진담으로 바꿔 생각했다. 어른도 산타의 선물을 받으면 좋겠다. 그러면 어른들은 지금이라도 착한 일을 해야겠네. 1월에 산타의 선물을 받을 사람은 누구일까. 아니 그전에, 나는 선물 받을 자격이 있을까. 산타에게서 선물을 받을지, 못 받을지를 아는 것보다 선물을 받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지금 할 수 있는 착한 일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산타의 선물은 사람(아이)의 선행이 만들어내고 실제 선물을 주는 이는 먼 나라의 산타가 아니라 선행을 지켜본 가까운 사람(부모)이다. 사람의 선함을 믿어야지. 나는 마음의 촛농이 녹아든 만큼 드러난 심지를 가까스로 세우기 시작했다.

산타의 선물이 닿아야 할 곳이 많다.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에 들어간 지 2주가 넘었다. 산업현장에서 많은 이들이 쉽게 허망하게 죽는다. 그녀에게 산타의 선물이 꼭 닿길 바란다. 물론 이 선물도 ‘사람이 만드는 일’이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