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누구나 한 번쯤은 지난 1년을 정리해 본다. 개인의 습관인 경우도 있겠고 아니라면 문득 그동안 뭘 하고 살았나라는 생각이 든 까닭일 수도 있다. 그러다 결국에는 지나간 일을 돌이켜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쓴 웃음을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만큼 자기 반성은 어렵다.

근데 이 같은 반추가 개인이 아닌 사회 차원에서 이뤄진다면 이는 적극 권장해야 할 사안이다. 구성원들 속내가 담겨 있는 공론이기 때문이다. ‘저잣거리 민심’의 위대함은 위정자에게 잘못된 일이 많았다면 반성하게 하고, 좋았던 일은 더 잘 되도록 채찍질하게 해준다는 데 있다. 이 말은 이런 과정을 통해 사회가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부산시가 얼마전 2020년 10대 뉴스를 내놨다. 시가 1년 동안 시행했던 시정과 주요 정책의 성과에 대해 시민 46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표본이 얼마 되지 않아 민심을 그대로 반영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또 이런 조사는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그래도 대략적이나마 시민 정서 파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본다면 관심이 가는 부분이기는 하다.

1위에는 ‘코로나19 대응과 시민 협력으로 부산 만의 위기 극복체계 구축’이 올랐다. 두 번째로 많은 호응을 얻은 항목은 ‘김해신공항 백지화 결정, 가덕신공항 본격 추진’이었다. 다음으로는 ‘부산시 최초 직영 부산도서관 개관’ ‘대한민국 제1호 국제관광도시 선정’ ‘북항2단계 사업 추진, ‘2030월드엑스포 부산 유치’ 등이 뒤를 이었다.

모두가 부산에 더할 나위 없는 호재들이다. 코로나19로 전례 없는 어려움을 겪었던 부산 시민에게는 그간의 고통을 씻어주는 청량제가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시가 10대 뉴스를 내놓은 속마음일 터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자. 올해 부산에서는 이 같은 좋은 일만 있었을까. 그게 아님은 세살 먹은 어린 아이도 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한 해 동안 부산에서는 무수한 어려움이 존재했다. 지역 경기는 침체됐고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의 고민은 더 커졌다. 신생아 출생률 하락과 부산을 떠나는 사람이 늘면서 한 때 400만 명을 바라보던 인구는 330만 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또 올해 부산의 만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18.7%로 7개 특별·광역시 가운데 가장 높았다. 부산이 곧 이 비율이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거의 기정사실이 됐다.

무엇보다 지난 1년 중 최대 악재는 불미스러운 이유에서 비롯된 시장 사퇴다. 그렇지 않아도 지자체 생존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판국에 진두지휘를 해야 할 지도자가 사라져버렸으니 엎친 데 덮친 꼴이 된 셈이다. 개인 역량이 사회에 미치는 힘이 얼마나 되는지는 계량이 어려우나 현직 시장의 존재 여부가 시정에 끼지는 영향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이 탓에 외지에 사는 부산 출신들은 “그 곳이 원래 그런 동네였던가”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상황이 이렇다면 시가 올해의 시정 성과가 좋았다고 마냥 축하의 박수만을 쳐서는 될 일이 아니다. 정책에 대한 자찬 대신 한 해 동안 시정에 대해 아쉽고 부족했던 점이 무엇이었는지를 시민에게 먼저 묻는 것이 옳았다.

시민단체인 부산경남미래정책이 “시의 2020년 부산 10대 뉴스는 자화자찬만 있다”며 설문지와 조사 결과보고서 등 기본적인 통계자료를 공개하라고 목소리를 높인 이유다. 이어 이 단체는 시장 사퇴와 집중호우로 인한 수해 등이 10대 뉴스에 포함되지 않은 사유도 밝히라고 요구했다. 시가 자신들의 치부는 쏙 빼고 알리고 싶은 사항만 설문지에 포함시키는 얄팍한 수법으로 시민을 호도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구성원들을 더 분통 터지게 만드는 일은 연말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혼잡한 상황이다. 한 해를 통렬하게 반성해도 모자랄 판에 부산시장 선거가 임박하니 너도 나도 여기에 장단을 맞춘다. 현직 고위 공무원의 출마설이 나돌면서 가뜩이나 불안한 시정은 더욱 흔들린다. 이 같은 흐름은 내년 4월 선거 때까지 이어질 게 뻔하다. 이 와중에 서민의 아픔은 장밋빛 공약 속에 묻힐 수밖에 없다.

자기 반성은 개인이든 사회든 자체 발전을 위해 꼭 거쳐야 할 과정이다. 올해 겪었던 실정이 뼈에 사무친다면 시는 이 아픔을 더 나은 부산을 위한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민 모두가 걱정하는 대로 부산의 위상은 날로 떨어질 것이 뻔하다.

하루 하루 힘들게 사는 이들에게는 작은 일도 큰 기쁨이 된다. 내년 이맘때인 성탄절에는 누구나가 부산에서의 한 해가 “그런대로 괜찮았어”라고 말할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순진한 생각이라고 주변 사람의 손가락질을 받는다고 해도.

세종팀장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