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다. 해운대신시가지의 새 이름이 ‘해운대그린시티’로 정해졌다고 한다. 전국 공모 소식을 접할 때부터 든 생각이 “이번에도 ‘○○ 시티’?” 였는데 예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센텀시티, 마린시티와 더불어 ‘해운대 삼(3)시티’라는 말까지 생겨날 기세다. 게다가 당선작 외에도 우수상에 ‘해운대장산시티’, 장려상에 ‘포레시티’와 ‘장산시티’가 뽑혔다고 하니 ‘시티 풍년’인 셈이다. 1603건에 달하는 응모작 중에서 86.7%인 1393건이 ‘○○ 시티’였음에야, 우리 국민의 지고지순한 ‘시티 사랑’이 이만저만 아니다.

도시를 뜻하는 영어 ‘시티(City)’의 어원은 라틴어 ‘키비타스(Civitas)’이다. 시민을 가리키는 ‘Civis’에서 파생된 ‘Civitas’는 시민권, 도시를 의미한다. 영어 civil(시민의), civilian(문명인)이나, 프랑스어로 도시를 뜻하는 ‘cite(시테)’도 어원이 같다. 파리의 명소 노트르담대성당과 퐁네프다리가 있는 세느강의 유명한 섬 이름이 ‘시테’이다. 시티(City)가 도시라는 의미로 처음 쓰인 곳은 영국 런던이다.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은 BC 1세기 중반 로마군 총사령관 카이사르가 브리타니아 원정 때 다녀갔고, 기원 후 43년 로마의 클라우디우스 황제 휘하 군대가 점령해 성벽과 요새를 쌓기 시작한 템즈강 유역의 마을 ‘론디니움(Londinium)’에서 기원한다. 그리고 5세기 로마군이 브리튼 섬을 떠난 후 혼란기를 거치면서 이 요새 도시의 중심을 차지했던 구역을 ‘시티 오브 런던’이라고 부르게 된다.

이후 1215년 발표된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에서 “‘시티 오브 런던’은 모든 고전적인 자유를 향유하며 육로 및 해로의 관세를 면제한다”고 선언하면서 이곳은 ‘특별한’ 행정구역으로서의 지위를 갖게 됐고 오늘날까지 유지하고 있다. 현재 1.12평방마일(약 2.9㎢)의 좁은 구역에 거주인구 8000명에 불과한 ‘시티 오브 런던’은 인구 900만 명의 대도시인 런던의 핵이자, 금융기관 5000개가 입주한 세계적 금융 중심지로 건재하다. 영국 뿐만 아니라 유럽권에서는 이곳을 일컬어 ‘더 시티(The City)’라고 부른다. 모든 도시의 기원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이는 모두 서양의 이야기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독창적인 한글을 가진 나라에서 ‘시티’라는 말에 유난히 집착하는 것은 우리들 무의식에 서양 언어와 문화에 대한 사대주의가 존재하기 때문 아닐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격언을 새삼 곱씹어 본다.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