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한파로 모든 사람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뜻밖에 희소식이 하나 날아들었다. 독일 베를린 미테구 의회가 지난 1일 전체회의에서 녹색당 등이 공동발의한 평화의 소녀상 영구 존치안을 의결했다고 한다. 지난 9월 미테구 공원에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되자, 일본 정부가 독일 정부에 압력을 가해 이에 굴복한 미테구청이 소녀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하면서 이 문제가 국제적인 이슈로 불거졌다. 미테구청은 소녀상 철거에 대해 한국과 독일의 시민단체들이 항의하고 독일 내 여론이 악화되면서 철거 방침을 일시적으로 보류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테구 의회가 내린 결단은 우리로서 큰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미테구 의회의 결의안으로 일본 정부의 소녀상 철거 주장은 일단 힘을 잃게 됐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일본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일본 의회 의원 82명이 ‘베를린 소녀상은 일본의 존엄에 상처’라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하는가 하면 또 일본 사회 일각에서는 ‘깨끗한 싸움만 해선 안 된다’면서 일본 정부의 대응 방식을 비판하고 전의를 불태운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쯤 되면 저들이 만들어낸 한일 간의 ‘역사전쟁’의 시나리오가 점입가경이라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동아시아 과거사 문제가 한일 간 외교적 갈등으로 노정된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2018년 10월 대법원이 일본 전범 기업의 강제동원에 대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서 징용 피해자 승소 판결을 내리자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해결된 문제이고 국제법에 어긋나는 판결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후 일본 정부와 관련 기업의 대법원 판결에 대한 불복으로 인해 일본 기업의 자산 압류 조치에 대한 법적 절차가 진행되자 양국 간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급기야 일본이 보복 조치로 한국에 수출 규제를 감행했고 이로 인해 우리의 주력 수출 상품인 반도체 산업에 심각한 타격이 우려되기까지 했다. 다행히 이후 사태가 일본의 의도대로 전개되지는 않았지만, 얼음장 같이 굳어진 한일 긴장 관계는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도 쉽게 풀릴 것 같지는 않다.
일제의 침략전쟁 중에 일어났던 강제동원 문제는 한일 간 풀어야 할 외교적 난제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 스스로 그 뼈아픈 역사의 진상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취지에서 2004년 11월 출범한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가 2012년 말까지 활동을 마치고 노무동원은 물론 ‘일본군 위안부’, 군속 등 한국인 강제동원의 모든 실상을 알리고자 건립한 것이 국립일제강점하강제동원역사관이다.
남구 당곡 근린 공원 부지에 위치해 있는 이 강제동원역사관은 2015년 12월 개관했다. 역사관은 앞서 강제동원 진상 규명 과정에서 수집한 자료들을 전시하고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을 기억하는 전시 교육 기능을 담당한다. 피해자를 추모하는 공간이며, 강제동원과 관련된 전국 유일의 국립역사박물관이다.
그러나 개관 이후 벌써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강제동원역사관은 인권과 평화, 시민교육을 위한 공간으로서 제 자리를 찾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건립 당시에는 국립 역사관(박물관)으로 제법 큰 규모에 걸맞은 활동이 기대됐지만, 어찌된 일인지 막상 개관되고 나서는 정부 스스로 역사관에 별다른 관심과 애착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는 다른 국립박물관의 예와 비교해 너무나 형평성이 맞지 않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턱 없이 부족한 예산과 전문 인력의 부재 등으로 역사박물관으로서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다 보니 유물 및 자료 수집은 물론 시의성 있는 전시 행사 등 ‘박물관’의 일상적 사업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명색만 겨우 유지하는 정도의 최소한의 운영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강제동원역사관의 운영 실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역사관 예산 문제도 있지만, 애초에 부산에 역사관을 건립하면서 정작 역사관의 운영 책임을 맡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재단을 서울에 둔 탓도 있다. 재단을 서울에 두다보니 역사관 운영도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재단 사무실 임대료만으로 매년 6억 원씩의 국고를 낭비한다고 한다. 그런데 역사관 순수 사업비는 그간 연 평균 고작 2억 원 남짓이었다고 하니,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소리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국립박물관인 강제동원역사관을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곤란하다. 역사관 운영 주체인 재단과 정부는 재단 사무실을 부산으로 옮기고 역사관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예산을 뒷받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강제동원역사관 정상화와 지원을 위한 특별법의 제정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지역사회의 관심과 여론이 뒷받침되어야 실현 가능한 일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동아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