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사랑하는 부산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산이 완전무결한, 그리고 혁명적 차원의 예술도시로 탈바꿈하기를 바란다. 예술도시로 향한 꿈을 말하기는 했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막막하고. 덜컥, 겁이 난다. 나는 건축을 전공한 사람도, 도시의 재생에 관련해 디자인하고 기획하는 등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도, 도시의 조경에 조예가 있는 사람도 아니다. 단지 떠오르는 단어는 나무와 숲과 디테일, 이 세 단어이다. 자연은 예술의 본질을 담당한다. 예술적 영감은 자연으로부터 출발한다. 굳이 예술적 영감을 받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자연은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예술가의 뇌리에 뿌리내리기도 하고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도시 전체가 자연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나무와 숲을 조성한다고 해서 무턱대고 아무렇게나 나무와 숲을 심을 수는 없는 일이다. 전문가들의 의견들을 경청하여 실행 가능한 부분부터 시작하면 될 것이다. 나무와 숲과 꽃들이 어찌 예술가들만의 것이 될 수 있으랴. 부산시민의 것이다.
다음으로 생각한 것이 ‘디테일(detail)’이다. 작고 사소한 부분, 세부적인 사항, 꼼꼼하고 상세한 설명, 빈틈이 없고 자세하다 등등의 의미이다. 이 중에서 ‘작고 사소한 부분’, 이 항목을 말하고 싶어 말을 꺼내 보았다. 부산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에 가서도 약간 불만스러운 것은 쓰레기 처리이다. 사람들의 시선은 통제할 수 없는 것이기에 시선이 가는대로 그 공간이 보이기 마련이다. 시선이 잠시라도 머무는 곳에 흉물(?)이 보인다면 그것은 그리 상쾌한 경험이 아니다. 몇 년 전에 부산 작가들과 함께 시모노세키 여행을 갔었다. 쓰레기 없는 거리가 놀라웠다. 휴일인데도 청소도구를 든 아이와 엄마가 쓰레기 하나를 찾아 헤매는 광경도 목격했다. 휴지 한 조각 줍는 일이 디테일을 살린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음식과 생필품의 구입을 위한 배달의 횟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간다. 분리수거가 더욱 힘들어지고 환경오염의 수치도 상승하고 있음은 당연한 결과이다. 디테일을 죽이는 또 하나의 주범은 간판이다. 과장되고 이기적인 간판들이 도시 전체를 점령하고 있다. 점령군은 부산시민의 힘으로 몰아내야 한다. 이런 와중에 오히려 ‘겸손하고 디테일을 살린 간판들’이 눈에 띄게 마련이다. 간판도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도시 전체가 전시공간이다. 간판에 대한 규제법령에 상관없이 건물주 혹은 상점운영자들이 자발적이고 양심적으로 간판을 제작해주길 바란다.
국제신문은 지난 15일 자 청년의 소리 칼럼, ‘부산 청년활동공간을 응원한다’에서 예술도시 부산을 꿈꾸기 위한 좋은 소식을 들려주었다. KT&G가 부산진구에 마련한 복합문화예술공간 상상마당이다. 내년쯤 개장 계획이다. 모임의 이름부터 재미있다. ‘부산청년문화공간 청년작당소’라 한다. 문화예술 분야의 청년들이 모여서 상호 소통하는 장소다. 독립영화, 전시, 공연, 공예, 아카데미 등 다양한 장르에서 문화예술을 향유할 기회를 가진다는 취지이다. 16일 자, 폐교된 좌천초등학교를 문화교육 복합 플랫폼으로 조성한다는 역시 반가운 기사가 있었다. 좌천초 주변에 펼쳐진 웹툰 이바구길이라든지 동구도서관 책마루 전망대와 부산포개항가도, 증산공원 등의 관광자원과 접속해서 지역 주민과 관광객을 위한 체험의 장으로도 활용할 계획이라 전한다. 이러한 사업도 큰 틀에서 보면 도시를 위한 재생 프로그램에 속한다. 도시 전체를 바꾸었다는 스페인의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영국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 가까운 나라 일본의 나오시마 섬, 북경의 798 예술지구 등의 사례도 참조할 부분이다.
부산은 영화의 전당을 중심으로 한 주변의 문화적 인프라가 모여 이미 큰 역할을 해왔다. 또한 북항 프로젝트 오페라하우스 건립이 결정되었고 시행 중이다. 물론 이런 굵직굵직한 사업도 그 역할을 다하겠지만, 그보다도 사소한 공간을 최대한 가꾸고 활용하는 디테일 작업부터 시작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리라 생각한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