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과학에세이] 낫 이븐 롱(Not even wrong) /조송현

  • 조송현 동아대 겸임교수
  •  |   입력 : 2020-12-21 19:15:34
  •  |   본지 2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물리학 이론 중에 초끈이론(superstring theory)이라는 게 있다. 물리학의 양대 기둥인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하는 ‘모든 것의 이론(The theory of everything)’의 강력한 후보였다. 이 이론은 만물의 기본입자를 1차원인 끈으로 본다. 이에 따르면 우주는 진동하는 끈들의 집합이니 결국 우리 우주는 현악기가 만들어내는 웅장한 교향곡인 셈이다.

1984년 1차 초끈 혁명이 일어나면서 이론물리학의 물줄기가 바뀌어버렸다. 당시 각광받던 양자장론과 입자물리학이 뒷전으로 밀렸다. 재능 있는 물리학도는 너도 나도 초끈이론에 투신했다. ‘초끈이론 전공이 아니면 이론물리학계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1995년 에드워드 위튼이 발전된 초끈이론 형식인 M-이론을 창안(제2차 초끈 혁명)하면서 초끈이론의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아인슈타인이 실패한 통일장이론의 완성은 시간문제인 듯싶었다.

그런데 오늘날 네이처, 사이언스, 피지컬 리뷰 레터스 등 권위 있는 과학저널에서 초끈이론 논문을 찾아보기 힘들다. 초끈이론을 전공하겠다는 대학원생은 웃음거리가 될 정도다. 이미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이런 조짐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검증 불가능한 가설에 기반해 아무런 예측도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똑똑한 물리학자들이 초끈이론의 수학적 아름다움에 홀려 20년 넘게 집단적으로 헛것을 좇은 꼴이 되고 말았다.

초끈이론은 이제 실패한 이론의 전형으로 추락했다. 심지어 ‘낫 이븐 롱(Not even wrong)’이라는 조롱까지 받는다. 2006년 미국의 이론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피터 보이트가 초끈이론의 실패와 물리법칙의 통합을 향한 도전을 담은 책 ‘Not Even Wrong’(한글번역판 제목은 초끈이론의 진실)을 내놓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낫 이븐 롱’은 물리학계에서는 아주 유명한 말인데, ‘틀렸다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엉터리’라는 뜻이다.

이 용어의 원조는 ‘파울리 배타원리’로 노벨상을 수상한 볼프강 파울리다. 하이젠베르크, 디랙 등과 함께 20세기 초 양자역학을 주도했던 파울리는 학술토론장에서 신랄한 비판으로 상대방을 주눅 들게 만들기로 유명했다. 비엔나 서클의 논리실증주의에 큰 영향을 받은 파울리는 엄격한 기준으로 타인의 의견을 평가했다. ‘틀렸다’와 ‘완전히 틀렸다’를 자주 사용했는데, 한 번은 젊은 물리학자가 자신의 논문 평가를 부탁했을 때 “이건 틀렸다는 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다(It is not even wrong/Das ist nicht einmal flasch)”며 가차 없는 혹평을 가했다고 한다. 어떤 아이디어가 틀렸음이 확인되면 그 아이디어는 틀린 것이다. 그러나 어떤 아이디어가 맞는지 틀렸는지를 알 수 없다면 그 아이디어는 심지어 틀리지도 않은, ‘낫 이븐 롱’인 것이다.

미국의 과학저술가이자 과학계의 팩트체커 마이클 셔머는 최근작 ‘스켑틱-회의주의자의 사고법’에서 파울리의 ‘낫 이븐 롱’을 언급하면서 “이성(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고 강조한다. 그는 ‘모든 틀린 이론이 다 같지는 않다’고 주장하고, 저명한 과학저술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틀림의 상대성’을 인용한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주장은 틀렸다. 지구가 둥글다는 주장도 틀렸다(지구는 완벽한 구체가 아니므로). 그러나 당신이 두 주장이 같은 정도로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두 집단의 틀린 부분을 합친 것보다 더 틀린 것이다.’

진화론과 창조론이 미국에서 비슷한 수의 사람들에 의해 지지 혹은 비판받는다고 해서 진실이 그 중간쯤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는 아직도 치열한 논쟁을 촉발하는 ‘틀린 이론’이지만 다른 하나는 검증 불가능한 ‘낫 이븐 롱’인 것이다. 둘 다 틀린 이론으로 치부하는 것은 그냥 틀린 생각이 아니라 아주 크게 틀린 생각이다.

이성의 눈으로 틀림의 상대성을 인식하고 세상을 해석해보자. 지금 ‘검찰총장의 잘못’과 그에 대한 징계 ‘절차의 잘못’ 간의 대립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두 잘못이 같다고 여긴다면 이는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그러나 잘못의 본말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이야말로 ‘낫 이븐 롱’이다.

웹진 인저리타임 대표·동아대 겸임교수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도시공사 등 市 산하 5곳 출자·출연기관장 선임
  2. 2부산 여당 시의원들 이재명 지지선언 불발…‘원팀’ 만만찮네
  3. 3‘차량 쌩쌩’ 12차로…육교 원하는 주민, 난색 표하는 강서구
  4. 4부산 스쿨존 ‘잠깐 정차’도 안된다
  5. 5수소차 달리는데…인프라 확충은 ‘브레이크’
  6. 6서면삼익아파트 재건축 수주전, 동원개발-GS건설 대결
  7. 7재건축 기대감이 올린 해운대구 아파트값…1년간 46%↑
  8. 8여당 “엘시티 부지매각 수익 3억뿐” 도시공사 “당시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장동 개발과 달라”
  9. 9‘퀸’들이 돌아왔다…가을안방 대전
  10. 10근교산&그너머 <1250> 청송 신성계곡 녹색길
  1. 1부산 여당 시의원들 이재명 지지선언 불발…‘원팀’ 만만찮네
  2. 2윤석열 해명 과정서 또 전두환 두둔 논란
  3. 3TK 집결한 국힘 후보 4인방, 원팀으로 뭉쳐 이재명 때리기
  4. 4이재명 때리고 박정희 찬양하고…야당 후보 보수심장 TK 구애 작전
  5. 5[국감 현장] 대장동 환수조항 누락…야권 “의도적 삭제” 이재명 “보고 못 받아”
  6. 6[국감 현장] 부산대 “사범대, 교대 이전 추진”…조민 보고서는 공개 거부
  7. 7읍·면·동 소멸위험지역 비율…부산 48.3% 서울 3.3%
  8. 8여당, 부산저축은행·엘시티 소환…‘대장동 맞불’ 효과는 글쎄
  9. 9이전기관도 아닌데…해양진흥공사 5명 중 1명 사택 제공
  10. 10“호남서도 전두환 정치는 잘했다고 해” 윤석열 또 설화
  1. 1서면삼익아파트 재건축 수주전, 동원개발-GS건설 대결
  2. 2재건축 기대감이 올린 해운대구 아파트값…1년간 46%↑
  3. 3여당 “엘시티 부지매각 수익 3억뿐” 도시공사 “당시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장동 개발과 달라”
  4. 4부울경 기업 항공기술의 집약체로, 한국 우주 개척 첫발
  5. 5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카운트다운만 남았다
  6. 6부산시 2조 투입해 바이오헬스산업 집중 육성
  7. 7쌍용차 새 주인 후보에 경남 함양 에디슨모터스
  8. 8일상 회복 기대감 타고, 나들이 품목 잘 나간다
  9. 9지방은행 ‘전금법 개정안’ 철회 촉구
  10. 10홍남기 “유류세 인하 내부 검토”…이르면 26일 발표 전망
  1. 1부산도시공사 등 市 산하 5곳 출자·출연기관장 선임
  2. 2‘차량 쌩쌩’ 12차로…육교 원하는 주민, 난색 표하는 강서구
  3. 3부산 스쿨존 ‘잠깐 정차’도 안된다
  4. 4수소차 달리는데…인프라 확충은 ‘브레이크’
  5. 5주차 시비 붙은 상대방 차에 매달고 달린 50대
  6. 6코로나로 부산 헌혈자 팍 줄었는데…부산시 조례 예우규정 명시 6년째 뒷짐
  7. 7민주노총, 전국 14곳서 총파업대회…부산 1500여 명(경찰 추산) “불평등 철폐” 촉구
  8. 8오늘의 날씨- 2021년 10월 21일
  9. 9학교 급식 종사자도 파업 동참…빵 등 대체식 제공
  10. 10부울경 흐리고 비...밤까지 5~20mm
  1. 1LPGA 한국 200승 역사 쓸까…기장서 별들의 샷
  2. 2황선홍호, U-23 아시안컵 예선 위해 출국
  3. 3메시, 이적 후 첫 멀티골…PSG 구했다
  4. 4밀워키, 개막전서 우승후보 브루클린 제압
  5. 5프로구단-지역 상생 리스타트 <3> 지역과 협업 시즌2 시작해야
  6. 6LPGA BMW 챔스 21일 개막…선수단 호텔 격리 시작
  7. 7“부산 스포츠 산업화, 구장은 짓고 규제 허물어야 가능”
  8. 8아이파크 안병준, 초대 ‘정용환상’ 수상
  9. 9아이파크, 개성고 이태민 품었다
  10. 10BNK 썸 박정은 감독 “우승하면 팬과 캠핑 떠나겠다”
PK상임위장의 지역발전 약속
민홍철 국방위원장
대선주자를 만나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 “文정부 탈원전 정책 손볼 것…원전 밀집 PK 피해는 보상”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2021년 6월 25일 아침에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무위자연(無爲自然) 정신으로 살아가기
기고 [전체보기]
월드시티 부산을 향한 대항해 /조유장
미세플라스틱 위협에 선도적 대처를 /박한배
기명칼럼 [전체보기]
복지국가 지속가능성과 기본소득
“일본, 대화와 협력의 방향으로”
기자수첩 [전체보기]
영화 같은 선거토론 회피 모의…‘제2 김대근’ 다신 없어야 /임동우
일본 군국주의 살풀이로 전락한 올림픽 /권용휘
김갑수의 생각 [전체보기]
지금 한국인은 어리둥절하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수신(修身)을 위한 음악 선비음악
판소리 공연의 매력
도청도설 [전체보기]
국산 로켓 누리호
억새의 계절
독자의 소리 [전체보기]
앞치마 입은 자영업자 영정사진 /김옥숙
슬기로운 코로나19 대처방법 /신우원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한국 ‘어묵탕’과 일본 ‘오뎅’의 차이
감칠맛이라는 배후세력
사설 [전체보기]
2030 부산엑스포 유치전, 전국민적 열기 절실하다
아파트 경비원에 갑질 땐 과태료…처우 개선 계기되길
수소칼럼 [전체보기]
수소경제는 부산 성장의 기회 /이욱태
여론 광장 [전체보기]
코로나시대 커뮤니티 비즈니스 ‘관광두레’ /조윤미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혁신, 엑스포 그리고 해리티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중국 정부가 악수를 두고 있다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일상 회복으로 가는 길
캐스퍼의 질주와 상생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너 해봤어?
정책 제언 [전체보기]
지방대학 대위기 ‘준공영제’로 넘자 /김종한
가상화폐 정책과 블록체인 특구 /김홍배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필하모니 감상시간
오월의 노래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다시’ 검찰을 생각한다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최고의 와인은 어디에 있을까?
와인의 가치
특별기고 [전체보기]
‘대한민국 부산호’ 항해가 성공하려면 /오성근
공공콘텐츠 없인 북항 성공 없다 /서의택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불이선란’의 인장
임희지의 ‘난초’
  • 맘 편한 부산
  • 2021조선해양국제컨퍼런스
  • 제10회 국제신문 골프대회
  • 제23회부산마라톤대회
  • 극지논술공모전
  • 조선해양사진 및 어린이 그림공모전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