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기다려진다. 주말엔 직장생활에서 벗어나 나만의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주말 오후엔 가벼운 마음으로 골동품 가게를 찾아간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는 버릇처럼 돼 버렸다. 차를 몰고 가면 몇십 분이면 도착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차창 밖으로 펼쳐진 시골 풍경과 철 따라 변하는 산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긴다.

골동품가게는 나에게 푸근함을 준다. 앞마당에는 오래돼 이끼 낀 석물이 묵묵히 팔려 갈 꿈을 꾼다. 햇빛과 비바람을 얼마나 맞았으면 저런 아름다운 이끼가 앉을까. 고태의 멋이 서려 있다. 전시된 돌절구와 맷돌 등을 둘러보고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선한 인상의 주인장이 나를 맞아준다.

가게 안에는 옛날 반닫이와 궤짝이 많이 있고 도자기와 온갖 민속품이 전시돼 있다. 오래된 물건이라서 그런지 괜히 마음이 숙연해진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 했던가. 옛 선조가 사용한 물건에서 뜻 모를 정감과 생활의 지혜를 발견한다. 옛날 물건에서 ‘옛날’이라는 의미는 오래돼 숨어버린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진실을 찾을 때마다 새롭고 오래 볼수록 명상에 들게 한다. 이런 물건을 사용한 사람을 그려보고 물건에 담긴 사연도 상상으로 짚어본다.

골동품에 묻어나는 흘러간 세월은 인간사 생로병사(生老病死)와 걸음을 같이한다. 골동품이 보내야 하는 세월은 인간이 보내야 하는 세월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삶을 살다 보면 누군가 애지중지 아끼던 물건도 어느 순간 그의 손을 떠나 다른 이의 손으로 옮겨가 사랑을 받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영원한 자기 소유의 물건은 없다고 보면 마음은 한결 너그러워진다. 골동품 가게는 이렇듯 나의 물욕을 되돌아보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직도 내려놓지 못한 것이 있다. 취미생활에서 비롯된 수집벽과 집착이다. 나는 고서화를 좋아한다. 내가 주말을 기다리는 진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용돈을 모아 마음에 드는 고서화 한 점을 사는 것은 나에게 큰 기쁨이다. 여력이 없어 사지 못했을 때는 그림이 눈에 아른거려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골동품 가게에는 고서화 전시장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거기서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풍경화를 보면 수려한 산이 우뚝우뚝 솟아 안개에 싸여있고 그 아래로 강물이 유유히 흐른다. 강의 중간에는 기암괴석이 한자리를 차지해 멋을 부린다. 강가에는 버드나무가 조용히 바람에 휘날린다. 버드나무 그늘에 조각배를 띄워놓고 낚시하는 신선을 보면 마치 내가 신선이 된 기분이 든다.

신선이 드리운 낚시에는 바늘이 없다던데 정말로 바늘이 없을까, 나도 신선처럼 살 수 있을까, 강물 속 보이지 않는 물고기는 얼마나 클까, 새는 어디로 날아가 버리고 이 그림에는 없을까, 신선은 배 위에서 별을 보며 잠을 자겠지 하는 생각 등으로 그림 속에서 놀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어떤 때는 나도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 수묵으로 그려보기도 한다. 그리다 보면 삼매(三昧)에 들어 시간은 저만치 멀리 가 있다.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고서화에 집착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가 보다.

집착은 가끔 부작용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림이 마음에 들어 샀는데 짝퉁으로 밝혀지는 경우다. 그럴 땐 속상하지만 그림 보는 공부가 덜돼 생긴 일이니 배우는 과정에서 수업료를 낸 셈 치고 마음을 추스른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데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속아봄으로써 알게 되는 것에 참뜻을 두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은 좋지만 과도한 집착은 몸과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기에 경계해야 하겠다.

예전에 나는 야생화를 좋아해 산으로 들로 꽃집으로 쏘다녔다. 아파트 베란다에는 여전히 야생화가 가득하다. 그랬던 내가 언제부터 고서화에 매료되었는지는 분명찮다. 언젠가는 그동안 수집한 고서화 전시회를 열고자 하는 꿈도 갖고 있다. 꿈이 이루어졌을 때 이 물욕도 내려놓아야 하겠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직장생활에서 벗어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취미생활이라고 대답하겠다. 취미에는 혼자 하는 것과 여럿이 어울려 하는 것이 있다. 지금은 언택트 시대다. 여럿이 하는 취미활동도 좋겠지만, 혼자 하는 취미생활로 코로나에 지친 마음을 달래면 어떨까.

시인·인제대학교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