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투 필요하신가요?”
웬만하면 사양한다. 메고 온 가방에 대충 넣거나 양손에 들고 끼고 걸어본다. 내 쇼핑 품목들이 ‘나 오늘 야근이에요~’. ‘저 오늘 저녁에 이거 해먹어요.’라고 광고를 하지만 뭐 어쩔 텐가. 간단한 물건 몇 개 사고는 멀쩡한 비닐봉투 한 장을 금방 버리는 일이 아깝다. 더구나 요즘은 배달음식을 자주 시키다보니 포장용기 배출량이 만만치 않다.
북태평양에는 남한 면적 7배에 달하는 쓰레기섬이 있다고 한다. 1950년대 이래 인간이 생산한 플라스틱 중에 63억t이 버려져 지구 표면을 돌아다닌다는 거다. 멀리 있는 쓰레기섬까지 갈 것도 없이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 광안리 해변에 밀려온 쓰레기를 보면 바다 속이 짐작이 간다. 입시가 내 일이던 아주 예전부터 환경공학과는 미래에 각광받을 유망학과였는데 나는 그때 기준 미래에 벌써 도착했다. ‘내일은 늦으리’ 환경콘서트에서 회색 하늘을 걱정하며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는 두 눈 가득 별을 보게 해달라고 노래한 게 그러니까 무려 1992년이다. 재앙이 곧 다가올지 모른다고 하면서도 습관은 바꾸지 못하고 달려 온 게 수십 년. 이제 기후 변화의 임계점인 지구 온도 1.5도 상승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7년이라고 한다.
국제신문 12월 14일자 2면에 서울청년기후행동의 기자회견 사진을 실었다. 청년기후행동은 프랜차이즈 운영기업 30곳을 상대로 배달용 플라스틱 쓰레기 감축 의지와 실천 방안을 묻는 질의서를 발송하고 그 답변결과를 공개했다. 답변을 보내 온 곳은 30곳 중 이비가푸드, 아모제푸드, 더본코리아 3곳이었다고 한다. 프랜차이즈 업체는 벌써 지난 5월에 코로나로 인해 배달용기 사용량이 늘어나자 자발적으로 환경부와 협약을 맺고 플라스틱 용기를 줄이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청년기후행동은 자발적 노력으로는 실제 포장용기를 줄이기 힘들다면서 정부가 종이용기로의 전환이나 다회용 용기 사용 지침을 강화하라고 촉구했다.
청년기후행동이 벌이는 캠페인 중에는 ‘3.5% 시민의 힘’이 있다. 3.5%는 미국 덴버대의 정치학 교수 에리카 체노워스가 발견한 법칙이다. 기후위기의 심각함을 알리고 정책 결정자를 변화시키는 여정이 멀어 보이지만 전체 국민의 3.5% 이상이 꾸준히 집회나 시위를 이어가면 정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거다. 20세기 이후 일어난 운동은 예외 없이 성공했다고 한다. ‘전환’은 거창해보이지만 3.5%에서 출발한다면 해볼 만하다.
지역 언론의 관심도 사진 한 장에서 출발해서 생태, 환경 이슈를 좀 더 촘촘히 들여다 볼 수 있는 특집기획, 전문기자까지 점점 커졌으면 한다. 우리 지역에는 특히 도시계획이나 건설과 관련한 이슈가 많은데 지난 일주일간 국제신문 지면에는 청년기후행동의 플라스틱 감축 기자회견 소식과 함께 지리산 궤도열차, 해수면 상승 이슈가 등장했다. 비중은 아쉽다. 해운대-이기대 해상 케이블카는 남구 의회에서의 의원 발언을 소개하면서, 그리고 사람과 이야기 면에서 부산골목시장 상권을 살릴 킬러콘텐츠로 필요하다는 주장을 다뤘다. 환경적 영향이나 고유한 개성 있는 관광자원인지에 대한 검토는 없었다. 온라인 뉴스에서는 부의 크기에 비례해 해안 뷰를 점령한 고급 고층아파트 문제를 다뤘다. 사회, 지역면에 흩어져 있는 우리가 당면한 환경 이슈를 전체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모아이 석상으로 유명한 이스터 섬이 있다. 한 때 눈부신 성취를 이뤘지만 섬의 나무를 모조리 베어버려 마침내 절멸한 문명.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의 붕괴’에서 마지막 야자수를 벤 이스터섬 주민은 뭐라고 하면서 그 나무를 베었을까? 궁금해했지만, ‘인간의 흑역사’를 쓴 톰 필립스는 더 좋은 질문은 마지막에서 두 번째 나무나 마지막에서 세 번째, 네 번째 나무를 벤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베었느냐가 아닐까- 질문했다. 아마 그 대답은 ‘내 문제도 아닌데 뭐’ 정도였을 거라면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인류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이제 환경 문제를 좀 더 적극적으로 다루어야 할 때다.
부산시민운동지원센터 변화지원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