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은 노래를 연습하러 가는 곳이고, 콘서트장은 그렇게 연습한 노래를 가수에게 자랑하기 위해 가는 곳이다.” 한국 젊은이끼리 자연스럽게 주고받는다는 이 말을 듣고 나는 ‘과연 그렇구나!’ 싶어 깔깔대며 무릎을 쳤는데, 무릎이 아플 지경이었다.

유튜브에서 ‘떼창’을 검색했다. 외국 가수 내한 공연 영상이 주루룩 뜬다. 그 넓은 콘서트장을 채운 젊은 한국 관객은 외국 가수의 노래를 다 따라 부른다. 목청껏 부른다. 랩까지 한다. 저 길고 복잡한 영어 가사를 어떻게 다 외운 걸까? 이건 혹시 한국식 영어교육이 거둔 뜻밖의 1승?

어떤 장면에선 객석 노랫소리가 더 크다. 가수의 노래가 묻힐 때도 있다. 외국 가수는 어떻게 반응할까? 자기 노래를 방해했다고 불쾌해할까? 정반대다. 일단 눈이 커진다. ‘얘들 뭐지?’ 그 뒤 살짝 웃는다. 마이크를 객석으로 돌리거나, 입 다물고 관객 노래에 반주해준다. 노래방에서 닦은 솜씨를 가수에게 자랑하고, 가수는 감격하는 ‘떼창 절정’ ‘떼창 발사’다.

관객 호응에 감동해 우는 가수가 꽤 있다. 지난해 내한 공연한 멋진 영국 가수(정말 멋지다) 앤 마리가 무대에서 눈물 흘리자 앤 마리 노래를 떼창하던 관객은 “울지 마! 울지 마!”를 또 떼창한다. 덴마크의 루카스 그레이엄은 같은 해 내한공연 때 한 번 울먹거리고 두 번 큰절했다. 전설의 그룹 보이즈 투 멘의 멤버 네이선도 2019년 서울 공연 때 울었다. 천하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인터뷰에서 “나, 한국 공연 때 제대로 울었다. 무대에서 눈물 흘린 건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노래하는 다비드상’이 별명인 절정 미남 가수 크리스토퍼는 떼창에 감동해 무대에 벌러덩 누웠고, 퍼렐 윌리엄스는 깜짝 놀란다. 에미넴은 “겁나 잘 노네!”라며 감탄사 속사포를 터뜨리고, 에드 시런은 “내가 만난 최고 관객, 최고 반응”이라며 에너지를 폭발한다.

물론 이는 문화 특성이다. 문화 특성은 나라나 도시별로 다채롭다. 일본의 외국 가수 공연장은 좀 더 조용하다고 한다. 떼창도 하고 환호도 하지만, 소리가 덜 크고 가수의 노래를 듣고자 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고 가수들은 말한다. 이는 자연스러운 태도다. 이런 취향을 존중한다.

한국형과 일본형 중 골라야 한다면? 나는 한국 스타일을 택하겠다. 왜냐? 가수가 노래하고 관객이 감상하면 그건 공연이다. 관객이 떼창하고, 가수가 감동해, 서로의 에너지가 폭발하면 그건 공연을 넘어 새로운 그 무엇이 된다. 가수란 아무리 위대해도, 아니 위대할수록 실은 가냘프고 섬세한 예술가일 뿐이다. 호응에 약하고 응답을 원한다. 그게 충족되면 에너지를 폭발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떼창은 그렇게 콘서트를 새로운 장르로 만들어낸다. 판소리·마당극의 추임새와 원리는 비슷하다.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사실과 마주친다. 기성세대인 나도 당신도 이 아이들에게 공연장 가서 떼창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말렸다. 공부나 한 자 더 하라고 했다. 무시무시한 입시 터널로 밀어 넣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많은 한국 젊은이가 입시지옥을 뚫고 놀라운 수준의 떼창을 배웠단 말인가? 짐작 가는 바는 있다. 우리 기성세대도 그랬던 거다. 부모님이 그렇게 막아도 공연장과 노래방을 얼마나 싸돌아다녔나? 지금은 나이 지긋해지고도 트로트에 빠져 “테스형!”을 목놓아 부르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중국의 진수가 3세기에 쓴 역사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을 인용해본다. “부여의 제천행사 영고(迎鼓). 은력(殷歷) 정월에 지내는 국중(國中) 대회로 날마다 먹고 마시며 노래하며 춤춘다. 이때…죄수를 풀어준다.” “고구려의 동맹(東盟). 10월에 읍락 남녀들이 모여 밤새 서로 노래와 놀이를 즐기며 제천(祭天)한다.” “예(濊)의 무천(舞天). 해마다 10월에는 하늘에 제사 지내고, 밤낮으로 술을 마시며 노래하고 춤춘다.” “삼한. 가무와 음주를 좋아하는 풍속이 있다.”

제천행사는 민족마다 다 있었다. 그런데 그때의 중국 사람들 눈에도 워낙 특별해 보였으니 동이족·한민족의 음주가무·신명·흥을 도드라지게 기록해뒀을 것이다. 내한 공연 와서 떼창에 놀라는 외국 가수와 마찬가지로 당시 중국 사람들도 놀랐던 거다. ‘얘들 뭐지?’ 겁나게 잘 놀았단 얘기다. ‘삼국유사’ 속 수로부인, 김수로왕, 만파식적 이야기의 노래·춤도 연장선이다. 그래서 질문은 이것이다. 이래도 한국인 문화 DNA·문화 코드가 없다고 할 텐가?

잘 논다는 건 무엇인가? 서로 대등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자율을 존중했다는 거다. 안 그러면 잘 놀 수 없다. 그럴 때 창의가 샘솟는다. 민중이 주인인 나라에서 민중은 시끄럽다. 정치는 이런 민중의 활력을 방해하지 않고 잘 뒷받침해주면 된다. 이게 21세기 한국 정치가 할 일이다. 나는 한국 젊은이의 떼창에서 문화의 힘과 미래 희망을 본다.

선임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