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으로 유럽의 중앙에 위치한 스위스는 국민소득(1인당 GDP)이 8만 달러가 넘는 ‘부자 나라’다. 국내 총생산은 세계에서 19위, 구매력 평가 36위이다. 작은 국토 면적에도 세계 20위의 수출국이다. 주요 수출 품목은 금, 의약품, 독극물 및 배양액, 귀금속, 손목시계 순이다. 부가가치가 높은 제조업과 관광산업, 제약, 금융산업이 골고루 발전해 있는 탄탄한 경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제조업 가운데서도 시계 산업은 물론 기계와 전자 분야, 금속가공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기업이 즐비하다. 이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 발달로 안정된 일자리와 80%에 달하는 높은 고용률을 자랑한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제약회사도 많아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약품 중 상당수가 스위스제이다. 국가 면적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알프스 산맥과 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꼽히는 융프라우, 만년설, 호수 등 자연환경을 활용한 관광산업의 발달은 두말할 나위 없다.

지난달 초 리누스 폰 카스텔무르(Linus von Castelmur) 주한 스위스 대사가 3박4일 일정으로 부산을 찾았다. 스위스 바젤대학교 출신으로 현대미술 분야에 조예가 깊은 그는 이번 방문 기간 2020부산비엔날레 관람, 부산시립미술관 방문, 아트부산&디자인 개막식 참석 등의 일정까지 소화했다.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은 시청 접견실에서 올해 ‘국제관광도시’로 선정된 부산과 관련해 글로벌 수준의 스위스 관광 비결을 알려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방문 3일째 저녁 필자의 스위스 명예영사 취임 축하 리셉션에도 참석해 자리를 빛내 주었다. 해운대에서 마련된 만찬 리셉션 행사에서 스위스 제네바국제연합사무처와 국제기구대표부 1등 서기관을 지낸 우경하 부산시 국제관계대사가 첨단 제조업과 관광산업이 발달한 스위스와 부산의 비슷한 점을 집중 거론해 참석한 경제인들로부터 공감을 얻었다.

스위스는 유럽 5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제조업 비중 19%에다 관광 등 서비스산업으로 안배된 부산 경제구조와도 흡사하다. 이 가운데 기계산업은 스위스 경제에서 소득 수출 안정된 일자리 등 모든 분야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시계 산업 수출만 연간 250억 달러에 이르는 초정밀기계산업의 메카이기도 하다.

스위스대사관은 R&D개발을 서울대 KAIST등과 주로 해왔는데 부산권대학과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로 했고 코로나 이후 스위스와 부산 간의 직항노선도 개설하고 2030등록EXPO의 부산 유치에도 적극적인 협조를 약속하고 있다.

부산상공회의소가 최근 조사 발표한 제조업 체감경기를 가늠하는 기업경기실사지수(BSI)가 53까지 떨어졌다. IMF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수준이다. 내수는 물론 주요 수출 대상 국가들이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이중 삼중고에 봉착했다. 부산 제조업의 구조적 취약성이 불황을 더 고착화시킬 것이라는 암울함까지 더해지고 있다.

부산연구원에서도 2016년부터 고용 부진이 지속된 부산 제조업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부터 취업자 감소가 확대되고 코로나19로 상황이 더욱 나빠지고 있다는 경제동향 보고서를 낸 바 있다. 2015년과 지난해를 비교한 자료를 보면 부산지역 주력 제조업인 조선(-40.9%), 철강(-17.6%), 자동차(-8.0%) 등의 취업자 수가 눈에 띄게 곤두박칠쳤다. 부산 제조업 월평균 임금은 지난해 하반기 기준 282만 원으로 전국의 311만 원에 비해 29만 원 낮았다. 고용보험 가입 비율도 부산이 62%로 전국(80.3%)에 비해 낮았다. 상용직 비중은 76.4%로 전국(78.1%)에 비해 1.7%포인트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부산 제조업 고용 부진은 취약한 산업 구조와 경기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부산 제조업 고용 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위해 중·장기적으로 고부가가치산업을 육성하고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 성장을 통한 일자리를 창출 밖에 없다.

부산연구원은 친환경 생산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자동차·조선업 등의 업종 전환과 다각화 지원 강화, 산업구조가 유사한 동남권 대기업과 지역 중소기업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 사업 서비스업 육성을 통한 부산 제조업 생산성 향상과 동남권 제조업벨트 허브도시 역할 수행 등을 처방전으로 제시했다.

지역 경제 활성화와 안정된 고용 구조를 위해서는 첨단 제조업 육성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산업의 체질 개선을 위한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와 부가가치가 높은 부품·소재 분야 비중 확대, 산·학·관·연 연대 강화와 긴밀한 협력 관계 구축을 통한 전문 인력 공급망 구축과 산업 구조고도화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부산기계공업협동조합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