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앤젤레스 시내에서 태평양 연안까지 2.5㎞ 가량 동서로 이어진 선셋대로(Sunset Boulevard)는 할리우드의 상징과도 같다. 미국인들은 선셋대로 하면 동명의 고전영화를 자주 떠올린다. 한물간 여배우의 과대망상을 통해 화려한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이면을 들춘 빌리 와일더 감독의 문제작이다.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최고상을 받자 트럼프 대통령이 불만을 터뜨리며 “우리는 더이상 이런 위대한 영화를 볼 수 없는 건가”하며 언급했던 그 영화다. 영화는 느와르지만 현실의 선셋대로는 저물어가는 태양의 오렌지빛 장관이 매일 저녁 펼쳐지는 관광 명소다.
할리우드 못지 않은 해넘이길이 부산 사하구 낙동강 하구에 있다. 을숙도를 시작으로 하구둑~홍티~아미산 전망대~다대포 낙조분수~몰운대까지 15㎞ 구간의 ‘선셋로드’가 그것이다. 선셋로드가 끼고 있는 낙동강과 을숙도 일대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청춘의 해방구였다. 나그네 강나루 초원 초가집 나루터 대학촌 등 곳곳에 민속주점이 즐비했고 노랫소리가 쉴 새 없이 새어나왔다. 사랑과 이별의 공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엄혹했던 시절의 울분을 쏟아냈던 장소였다. 지금의 50대 이상 장년층이 낙동강과 을숙도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낙동강 선셋로드가 이번에는 거리 미술관으로 변모한다. 사하구는 선셋로드 일부인 장림포구~다대포 노을정 3.5㎞ 구간에 그림과 조각 작품 10점을 내년 3월까지 설치할 계획이다. ‘2020 공공미술 프로젝트 우리 동네 미술’ 정부 공모에 사업이 선정된 덕분이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지역 미술인들이 참여한다. 미술품 설치가 끝나면 주민들은 강을 따라 산책이나 조깅, 자전거를 즐기면서 자연에 어우러진 예술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서부산은 부산에서도 문화의 향기가 약한 지역으로 꼽힌다. 그러나 최근 을숙도에 문을 연 부산현대미술관, 다대포 무지개공단 내에 있는 홍티아트센터, 부산의 베네치아(부네치아)라 불리는 장림포구 등에서 다양한 예술적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바다 조망 못지 않은 게 강 조망이다. 강물의 느릿한 움직임이 주는 변화와 안정감은 어떤 경치와도 못 바꾼다. 이맘때 하구 모래톱을 물들인 노을을 바라보다 운이 좋으면 바로 눈 앞에서 줄지어 날아가는 고니떼의 장관을 경험할 수 있다. 낙동강이라는 거대한 자연을 품고 있지만 그 프리미엄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서부산에 예술의 작은 씨앗이 또 하나 뿌려졌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