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산 셈이다. 환경운동이랍시고 생태계 보전을 위해 나름 애썼지만 한 발짝 물러선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뭣 하나 제대로 이룬 것 없고 부끄럽다. 세상은 냉정하다. 내가 아무리 생태계 중요성을 호소해도 그냥 그때만 고개를 주억거릴 뿐, 누구나 자신의 이익과 배치될 땐 깔끔하게 돌아서는 걸 지켜봤다. 배신감이 매서운 바람처럼 내갈기고 지나갔다.
환경운동 하는 사람은 가난하다. 어쩌면 가난하니까 환경운동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내가 겪은 진실의 하나는 ‘돈 있는 사람은 (환경보전에) 뜻이 없고 뜻 있는 사람은 돈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나 권력이나 돈이 많을수록 그 공감력은 반비례해서 급락한다.
부모님으로부터 물질적으로 물려받은 게 없다. 내가 가난하기에 다른 사람들을 존중할 줄 안다고 생각한다. 정말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다. 잘생긴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다 같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게 다 물질적으로 가난한 덕분이다.
자연은 생산하는 이득을 불특정 다수에게 골고루 나눈다. 그러나 인간은 그 반대다. 가능한 한 소수 개체가 더 많은 재화를 독식하려 든다. 자본은 정말 무섭다. 자본은 행위의 선악 여부에는 전혀 괘념치 않고 오로지 제 몸집 부풀리는 일에만 전념한다. 대부분 (생태계) 악의 편에서. 무슨 일이든 한다. 생태계를 파괴하고 환경을 망가뜨리는 일은 거의 대부분 자본이 저지른다.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기업도 있지 않은가 하겠지만 그건 단연코 기업 마케팅의 일환이다. 기업의 속성은 자본을 늘리는 데 있다. 돈을 벌어 환경이나 공익을 위한 일에 쓰는 기업에 투자할 사람은 없다.
해가 갈수록 지구생태계 조짐이 심각하다. 이제 기상이변이 일상이다. 아마 더 심한 꼴을 보게 될 거다. 차후 10년에 인류 문명의 존속이 달렸다고 아무리 외쳐도 인류는 해마다 탄소배출 기록을 경신해 왔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라 정말 무서운 현실은 지구온난화가 미칠 영향이다. 인류가 지금 멸종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강 건너 불구경’이다.
스웨덴의 17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누군가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내 머리로는 납득할 수 없는 정말 대단한 이다. 툰베리는 제24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당신들은 자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그 자녀들의 미래를 도둑질하고 있다”고 부르짖었다. 세계를 돌며 연설하고 시위했다. 그런데 툰베리가 이런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리라 믿는가?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는 툰베리로 인해 세계가 마침내 기후변화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칭송했고 또 누구는 툰베리가 노벨 평화상을 받았으면 사람들이 기후위기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텐데 안타깝다 했다. 그런 툰베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달라고 압박했다 한다.
대통령이 마음먹으면 기후변화 문제가 해결되리라 순진하게 생각하시는가? 그건 완전한 독재국가일 때도 어려운 일이다. 사실은 기후변화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들보다 온실가스를 마구 내지르는 사람들이 훨씬 더 어마어마한 권력과 자본을 갖고 있다. 그들의 안중에 돈벌이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자본은 이익이 된다면 신도 매수하려 든다.
우울하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시위를 해도 세상은 도덕적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제 숨이 막혀 저승 문턱을 넘게 되지 않는 한 지구온난화는 필연이다. 옆 사람이 죽어가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처참한 후쿠시마를 보면서도 원자력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상이지 않은가.
어차피 인류의 멸망으로 가는 길 하나뿐이니 괜한 고생 마시라. 있는 자원, 멋대로 펑펑 쓰다 다 같이 죽을 것 아닌가. 미래는 대부분의 인류가 멸망하고 몇몇 살아남아 종이 유지되는 상황일 지도 모른다. 지구가 멸망하는 게 아니라 인류가 멸망하고, 지구는 치유와 회복의 시간을 갖게 될 거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암울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시나리오는 고쳐질 것 같지 않다.
전 생명그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