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사망했다. 이재용 씨가 그의 재산을 상속하는데 세금이 10조 원이 넘는다고 한다.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은 당장 현금이 없으면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서 주식을 처분해야 하는데 그러면 회사 지배구조에 문제가 될 수 있으니 기업 경영권은 보장해 달라고도 한다.
상속제도는 나라마다 다르다. 중국은 형식적으로 사회주의 체제여서 사유재산제를 인정하지 않기에 상속이나 증여에 대한 세금이 없다. 미국에서는 상속제도를 인정해서는 안된다고 하거나 최소한 상속세를 폐지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세계적인 부자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이 바로 그렇다. 그들이 부를 대물림해서는 안 된다며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예를 든다. 자신이 메달을 땄다고 자녀의 출발점이 앞당겨지지 않듯이 부모가 부자라고 해서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아 자본주의에서 출발점이 앞당겨져서는 안 된다고 한다. 한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주식 부자 순위 40위까지 상속형 부자가 62.5%로 중국의 2.5%, 일본의 30%, 심지어 자본주의의 본 고장이라고 하는 미국의 25%보다 월등히 높았다.
고려시대에 음서제도라는 것이 있었다. 귀족자녀들이 시험을 거치지 않고 벼슬에 오를 수 있는 특혜를 말한다. 요즈음 말로는 조상찬스다. 북한 사회의 후진성을 지적하는 말 중에 정권을 세습한다는 게 있다. 그리고 대기업 노조를 귀족노조라고 하는데 그들의 요구사항 중 비난받는 것이 노조원 자녀에게 입사특혜를 달라고 하는 것이다. 위에서 열거한 사항은 자신의 노력이 아닌 부모나 조상을 잘 만나 물려받는 것인데 모두 비판받는 것들이다.
나는 재산상속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신분을 상속하는 것은 비판하면서 재산을 상속하는 건 왜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특히 자본주의에서는 신분의 상속보다 훨씬 영향력이 크고 유용한 게 재산상속임에도 말이다. 신분적 지위를 물려주는 것은 비판하면서 재산상속에는 별다른 말이 없다.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 중 하나가 형식적 평등을 지향해서 자신이 일한 만큼 얻지 못하고, 그 때문에 애써 일하지 않아 생산성이 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비하여 자본주의는 이윤동기를 매개로 자신이 일한 만큼 벌 수 있기에 발전한다고 한다. 자본주의가 건전하게 성장하려면 불로소득을 경계해야 된다. 불로소득의 비율이 높아질수록 자본주의 체제는 위험해진다. 불로소득이란 자신이 일하지 않고 얻는 소득을 말하는데 상속도 그 중의 하나다. 불로소득이 늘어나면 다른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부자가 되기 어렵고, 상속과 합쳐지면 자손들은 부를 대물림해 부자가 된다. 따라서 총 소득에서 불로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서는 안된다. 통계청의 조사 결과 1994년만 해도 사회의 계층 이동 가능성에 긍정적인 답변을 한 사람이 60.1%나 되었지만 2019년에는 23.1%로 줄었다.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거나 부자가 되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뜻이다. 그 때문에 근로소득에 대한 세금은 낮아도 상관없지만 불로소득에 대하여는 충분한 세금을 거두어야 한다.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왔던 샌더스 의원도 주 40시간 일하고 가난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워렌 버핏이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자신이 낸 세금 693만 달러가 많아 보여도 사실은 전체 소득의 17%에 불과하다. 내 사무실 직원들의 41%보다 훨씬 낮다”고 했다. 그는 심지어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거두라고 했다고 하는데 같은 맥락이리라. 예전에는 대부분의 나라가 노동생산성의 향상과 거의 같은 비율로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승했다. 열심히 일하면 그 만큼 임금이 올랐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상승한 노동생산성 부분이 임금인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임금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이자, 배당, 자본이득 등의 소득이 커졌다. 거의 모든 나라가 같은 상황이다. 이는 빈부격차를 크게 만들고 계층 간의 이동을 어렵게 하여 사회구성원의 희망을 꺾는다. 불로소득의 비중이 커지면 궁극에는 자본주의의 건전한 경제질서를 해치고 공산주의가 망한 똑같은 이유로 위기가 올 수 있다. 자신의 노력으로 얻지 않은 소득은 자본주의의 근간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만 인정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구성원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