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7월 독일 뮌헨에서는 ‘퇴폐미술전’이라는 제목의 전시가 열렸다. 나치즘에 반하는 진보적인 예술을 공개적으로 조롱하기 위해 기획된 전시였다. 나치 당국이 ‘퇴폐 미술’로 규정한 모던아트 650점이 전시됐는데, 여기엔 반 고흐, 피카소, 모딜리아니, 샤갈, 클레 등 저명한 화가들의 작품도 대거 포함됐다. 나치 정권은 이들을 미치광이, 정신병자, 또는 불구자로 취급하며 전국 미술관들에서 이들의 작품을 마구잡이로 몰수하거나 소각해 버렸다.
 |
|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군인으로서의 자화상, 1915년. |
독일 화가들 중 퇴폐미술가 넘버원은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였다. 그의 자화상을 비롯해 무려 25점이나 전시됐다. 보수적인 아카데미 미술을 거부했던 키르히너는 강렬한 색과 선, 형태를 통해 내면에 잠재된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던 독일 표현주의의 대표 화가였다. 하지만 전쟁과 나치 정권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1914년 독일의 여느 젊은이들처럼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그는 전쟁의 야만성을 직접 체험한 후 신경쇠약에 걸려 조기 제대했다.
이 그림은 제대 직후 그렸다. 해서 ‘군인으로서의 자화상’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화면에는 젊은 군인이 누드의 여성과 함께 등장한다. 푸른색으로 채색된 남자의 눈은 마치 혼이 나간 듯 초점이 없다. 길고 뾰족한 얼굴에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은 우울하고도 염세적으로 보인다. 배경엔 그리다 만 캔버스들이 있어 여성이 모델임을 암시한다. 그림 속 화가는 오른손이 절단된 상태다. 더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상태였다. 전쟁이 젊은 화가의 미래를 망쳐버렸음을 표현하고 있다.
키르히너는 제대 후 우울증까지 도져 약물에 의존했는데, 그림 속 담배는 그의 유일한 피난처이자 치료제였던 약물을 상징한다. 다행히 후원가의 도움으로 스위스로 이주한 그는 치료를 받으며 작업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림도 꽤 잘 팔렸다. 이번에는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퇴폐미술가로 낙인찍혀 더 그림을 팔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독일에서의 전시 활동이 금지되었다. 게다가 전국 미술관에 소장된 그의 작품 639점이 압수되었다. 나치 정권이 특히 못마땅하게 여겼던 이 자화상은 제목도 ‘창녀와 함께 있는 군인’으로 변경돼 전시됐다.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엄중한 전시 상황에 창녀와 육체적 쾌락이나 일삼는 부도덕한 군인의 자화상이 되어버린 거였다.
작품들이 몰수당하고, 의도가 변질되고, 더 전시를 할 수 없게 된 상황. 예술가에겐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이에 대한 분노와 항의의 표시였을까. 퇴폐미술전이 열린 이듬해, 그는 자신의 모든 작품을 불태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전쟁과 광기의 시대를 온몸으로 맞서 치열하게 살다간 키르히너. 지금은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독일 화가 중 한 명으로 평가 받고 있다.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