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달 7일 형법상 낙태죄를 존치하며 임신 14주까지는 낙태를 허용하고, 임신 15주에서 24주 사이의 낙태는 성범죄에 의한 임신이나 여성의 건강과 사회·경제적 사유 등 특별한 경우에만 허용하는 형법 및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 입법예고안은 지난해 낙태죄의 헌법 불합치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른 후속 조치로 전 기간 낙태를 금지한 현행법보다는 개선되고 현실화한 점이 있다. 그러나 아직도 특별한 사유가 없는 낙태나 임신 24주 이후의 낙태(임신 중절)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 범죄로 간주하는 것 때문에 여성들과 여성단체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형법(269조와 270조)에서 낙태죄 조항을 전면 삭제하고 모자보건법(제14조)에서는 임신 주수나 사유에 제한 없이 임신부의 결정으로 임신 중절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러한 ‘자유낙태’와는 반대로 산부인과 단체들은 의사 감독 없는 낙태 약물 도입에 반대하고, 낙태 가능 기간을 임신 10주 이내로 제한하고, 10주 이후에는 여성이나 태아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낙태에 관한 국제적 시각도 극을 달린다. 캐나다는 1988년 낙태죄 조항을 폐기하여 임신 기간과 상관없이 임신 중절을 허용하고 있으나 카톨릭 국가들은 아예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스웨덴 낙태법은 임신 주수에 따라 허용 요건이 달라지는 정부의 입법예고안과 유사한 점이 있다. 임신 18주까지는 자유낙태가 가능하고, 18주 이후는 여성의 건강, 태아의 결함 또는 사회적 문제 등의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 사회청의 허용으로 낙태가 가능하다.
스웨덴에서는 매년 약 3만5000 ~ 3만8000건의 낙태가 행해지고 있다. 임신 18주 이전까지는 자유낙태 법안이 오랫동안 유지되었지만 성교육과 부모와의 원만한 소통으로 10대들의 낙태는 계속 큰 폭으로 줄어왔다. 낙태 시기도 점점 빨라져 2019년에 행해진 3만6000건의 낙태 중 약 60%는 임신 7주 전, 94%는 12주 전에 이뤄졌다. 이 시기 이후에는 원하지 않은 임신에 의한 낙태는 드물고 임신 연령이 높아짐에 따른 태아의 결함에 의한 낙태가 많다고 한다. 이는 임신 16~18주가 되어야 태아의 결함에 대한 정확한 의학적 진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란다. 임신 22주 이후의 낙태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여성의 생명과 건강 또는 태아에 결정적 결함이 있으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임신 22주 이후 사회청에 신청된 낙태는 매년 10건 정도인데 이 중 9건은 태아의 결함, 1건은 여성의 생명 위협 때문이라고 한다. 후자의 경우 낙태보다는 조기 출산으로 여성과 태아의 생명 모두를 살린다고 보고되고 있다.
스웨덴 낙태법이 정부의 입법예고안과 다른 점은 여성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는 것이다. 즉 ‘낙태죄’란 개념이 없다. 대신 무면허 또는 허용되지 않은 낙태 시술을 한 의사는 벌금 또는 징역형에 처한다고 되어 있지만 이 또한 보고된 사례가 없다.
임신 22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는 것은 이 시기의 태아는 조산아로 태어나도 생존할 수 있고 DNA가 완성되어 태아의 생명·생존권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아와 여성의 생존권이 상충할 때는 여성의 생명을 우선시한다고 한다.
스웨덴의 낙태법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생존권’ 사이의 조화를 이룬 법이다. 우리 정부도 여성의 결정권을 존중하여 형법의 낙태죄(269조) 부분을 삭제하고 특별한 상황을 위하여 임신 24주 이후의 낙태 가능성도 열어두는 게 바람직하다. 반면 무면허·불법 낙태에 대한 처벌 조항(형법 270조)은 존치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원하지 않는 임신을 줄이기 위하여 성교육을 학교에서부터 철저히 하고, 남성의 책임회피를 막는 입법도 고려해야 한다. 임신 사실을 부모나 학교 등 주위에 숨기다 낙태시기를 놓치는 청소년들을 위하여 익명으로 접근 용이한 상담 및 의료지원 ‘청소년클리닉’ 설립이 절실하다. 또 임신, 낙태, 출산 그리고 영유아 초기 건강 및 성장에 이르는 전반적인 보건 및 의료 서비스를 제도화해야 한다. 미혼모와 1인 가정에 대한 사회·경제적 지원을 통하여 여성 혼자서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여 태아생존권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것이 금지보다 낫다.
전 경남교육연구정보원장·스톡홀름대 정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