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뭐지?…. 2018년 6월 12일 역사적인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합의문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한국전쟁과 냉전체제의 두 적대국 정상이 동남아시아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서 만나기로 했을 때, 그 기대는 매우 컸다. 왜냐하면 외교관례적으로 두 정상 간 만남이 성사되었다는 것은 당사국 간의 협상 쟁점이 타결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마침내 북핵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대감은 곧 실망감으로 퇴색되었다. 단지 합의문의 내용은 북미 양국관계의 미래를 향한 밑그림 같은 것이었다.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그리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노력을 약속하는 것 등이었다. 비핵화에 대한 세부적인 합의가 없는 앙꼬없는 찐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앙꼬는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채워지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새로운 역사를 쓰긴 했지만 거기까지 였다. 지난 3일 대통령선거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미국의 4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혼란’의 트럼프 시대는 가고, ‘정상화’의 바이든 시대가 열렸다. 바이든의 대외정책은 올 봄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실린 ‘왜 미국이 다시 세계를 리드해야 하나(Why America Must Lead Again)’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과 위상을 약화시켰다고 비판하고, 민주주의 가치에 의한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회복, 동맹국 및 기타 주요국가들과 다자주의적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대북정책과 관련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하향식(top-down) 접근법이 아닌 실무협상을 우선한 원칙과 절차에 따른 상향식(bottom-up) 단계적 접근으로 임할 것임을 시사했다. 아울러 동맹국들 및 중국과 협력하여 북핵문제를 해결할 것이며, 북한의 핵능력 축소 동의를 전제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날 수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의 북핵 접근방식은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지만, 트럼프 행정부와는 달리 예측가능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바이든 당선자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전하며 과거 민주당 정부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역사적인 경험을 공유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로버트 갈루치와 크리스토퍼 힐 등 과거 북핵협상에 임했던 인사들의 경험이 바이든 정부에게 유용할 것이다.
내년 상반기까지 우리에게 전략적 공간이 열려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새로운 외교안보 진용이 갖추어지고 자신들의 대외정책 우선순위를 매기는 동안 우리는 이를 잘 관리하고 활용해야 한다. 북한은 북미관계에 대한 과도한 기대로 하노이 이후 자신들의 시간을 낭비했다고 보고 있어서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높지 않을 것이다. 2009년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선 직후 곧바로 대포동 2호 발사와 2차 핵실험의 경우처럼 상대가 준비를 갖추기 전에 선제적인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상황이 더욱 꼬이게 된다. 북한은 내년 1월 예정된 제8차 당대회에서 미국의 대북제재를 상수로 놓고 국가전략과 5개년 계획을 수립할 것으로 예견된다. 바이든 행정부의 첫 단추는 내년 3월에 실시될 예정인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어떻게 하느냐이다. 트럼프의 북미대화가 쌍중단(핵실험·ICBM 발사 중단과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으로 시작된 것임을 볼 때, 북한은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중단여부를 미국의 대화의지로 읽을 것이다.
역사는 정직하다. 워싱턴 정책서클과 국무부 관료들의 이해와 동의가 부재한 상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갔던 대북 접근법은 성과를 낼 수 없었다. 그러나 싱가포르 회담에서 남긴 북미 양국의 합의문은 현재 시점에서 의미가 새롭게 부여되어야 한다. 북미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서 처음으로 공식 합의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그려놓은 밑그림(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그리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이제 바이든 대통령이 색칠하며 완성해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의 출발점은 싱가포르 합의문이다.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