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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건 칼럼] 사람은 비용도 기계도 아니다

전태일 열사 50주기 돼도 노동환경 개선 갈 길 멀어

노동계 관련 3법 추진에 여당은 기업 눈치에 미적, 그의 외침은 아직도 유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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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수 대비 경비원수를 계산하고, 다른 아파트와의 관리비 비교를 하는 것은 물론 필요한 일입니다만, 사람을 비용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부산 해운대구 한 아파트 입주민이 최근 엘리베이터에 내 건 호소문의 일부다. 이 아파트는 코로나19 등으로 경기가 침체한 상황에서 관리비 절감을 위해 8명인 경비원을 4명으로 줄이는 안건 투표를 앞두고 있었다. 투표 며칠 전 나붙은 이 호소문은 입주민 마음을 흔들었고 결국 안건은 부결됐다. 입주민은 돈보다 사람을 택했다. 물론 반대를 한 주민 또한 현실적 어려움이 없지 않았을 터이지만, 상생을 선택한 투표 결과를 충분히 수긍했을 것이다.

‘사람을 비용으로 생각하지 말자’. 50년 전 누군가의 외침과 많이 닮아 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며 자신 몸에 불을 붙인 전태일 열사의 정신이다. 노동자는 결코 비용일 수 없고 기계는 더더욱 아니라는 절규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이 그렇게 스러진 뒤, 근로기준법 등 우리 노동환경이 크게 개선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지금, 전태일 정신이 온전히 이 땅에 뿌리내렸다고 보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앞선 해운대 아파트 역시 극히 이례적인 사례일 뿐, 많은 아파트에서 경비원들이 속절없이 해고되고 있다. 사람은 여전히 비용으로 환산되고, 기계의 부속품으로 여겨진다.

최근 노동계 이슈 중 하나는 택배기사 과로사 문제였다. 올 들어서만 10여 명에 달하는 택배기사들이 엄청난 업무량을 견디지 못하고 숨졌다. 급기야 정부는 지난주 ‘택배기사 과로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골자는 하루 작업시간 한도를 정하고 주 5일제를 유도한다는 내용이다. 뒤늦게나마 정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책을 내놓은 건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장 목소리는 시큰둥하다. 인력 충원과 배송 수수료 인상 등 구체적 방안보다는 장기적 정책 방향만 제시한 반쪽짜리란 점에서다. 대부분의 대책이 권고 수준이어서 실효성도 의문시된다. 특단의 후속책이 나오지 않는 한 택배기사들은 비용이고 기계일 뿐이다.

비단 택배기사만의 문제겠나. 비정규직 노동자 양산은 국내 노동문제의 또 다른 뇌관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초 비정규직 감소를 주요 과제로 삼았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5인 미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여전히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서 허덕이고 있다. 2년 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김용균 씨가 작업장 사고로 숨진 뒤 관련법이 개정됐음에도 산재사망 사고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50년 전에 비해 나아졌다는 노동환경은 일부에게만 해당될 뿐, 이들에겐 당시와 다를 바 없는 숨막히는 현실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던 전태일의 외침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의 뜻을 잇기 위해 노동계는 50주기를 맞아 이른바 ‘전태일 3법’을 추진 중이다. 근로기준법 개정, 노동조합법 개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법안을 발의하며 입법에 주력해 왔다. 달라진 노동환경에 따라 불평등에 내몰린 신종 노동자들을 보호하자는 목적이 크다. 비정규직과 프리랜서 등 간접고용 노동자,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 택배기사 등 플랫폼 노동자가 그들이다. 그러나 거대 양당이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 개정에 적극적이지 않아 진척이 없는 상태다.

그나마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여야 간 논의가 되고 있지만 이 또한 여당의 의지가 미적지근하다. 이 법은 중대한 산업재해 발생 때 사용자 등을 보다 무겁게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도 여당은 긍정적이던 당초 입장과는 달리 갈수록 소극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당론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도 미온적이다. 문 대통령과 이낙연 대표의 과거 발언과는 딴 판으로 흐른다. 국민의힘 일부에서도 호응하는 마당에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다.

전태일 50주기를 맞은 지난주 여야 정치권은 어디랄 것 없이 전태일 정신을 외치며 노동환경 개선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국민의힘도 8년만에 전태일 관련 공식 논평을 냈다. 그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그러나 논평 하나로 끝낼 요량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떠들썩했던 50주기 행사가 끝나고 나면 지금까지 그래 왔듯 이내 잊혀질 공산이 큰 탓이다. 무엇보다 노동 존중 사회를 표방했던 정부 여당의 태도는 실망스럽다. 평등·공정·정의를 외쳤던 문 정부 초기의 결기는 어디로 갔는지, 기업의 눈치만 보고 있으니 말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전태일 열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바람직한 일이긴 하나, 이것으로 그의 정신을 온전히 이어간다고 할 수는 없다. 50년이나 지난 지금, 자신의 외침이 아직도 뿌리내리지 못한 안타까운 현실을 그는 과연 어떻게 생각할지 모두가 다시금 뼈저리게 되새겨야 한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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