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타계는 한국 기업사에서 재벌 2세 총수시대가 저물었음을 시사한다. 상당수 재벌에서 3세 경영이 시작되긴 했지만, 이 회장의 상징성을 감안하면 의미는 매우 크다. 현재 자산규모 상위 30대 재벌 가운데 3세 이상 세대로 경영권이 넘어간 곳은 전체의 절반에 이른다. 이 회장의 타계로 한국 재계가 본격 3세 시대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100억 원이 넘는 자산을 가진 우리나라 2만5000개 법인을 조사한 결과 창업 100년 이상 장수기업은 전체의 0.04%에 불과했다. 조사대상 기업 중에서 3세까지 경영이 이어진 곳은 1%도 안 된다. 이런 현실에서 경제적 비중이 높은 ‘장수재벌’이 늘어나는 것은 경제의 성장성과 안정성을 담보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재벌의 경영권이 누구에게 이어지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기업의 지속성이 유지되고 경제성장에 기여한다면 흑묘백묘(黑猫白猫)일 것이다.
그럼에도 재벌 3세 경영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새 세대가 펼칠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검증 없는 무차별적인 혈족승계에 따른 위험성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실 3세 경영인은 기업을 일궈 한국경제 발전에 기여한 창업주나 기업성장에 기여한 2세 경영인과 달리 성장의 정점에 이른 기업을 노력 없이 물려받은 ‘금수저’라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말하자면 출발선부터 사회적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재벌 3세들이 태생적 한계를 넘어 진정한 기업가로 홀로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다. 그들이 당면한 큰 장애물은 경영환경의 변화에 어떻게 적응할 것이냐하는 점이다. 압축성장이 절실했던 2000년 이전까지 재벌을 둘러싼 경영환경은 매우 우호적이었다. 재벌의 사소한 잘못이나 경제적 불균형도 성장과정의 필요악으로 인정했다. 정치권력에 의한 괘씸죄로 재벌이 망한 적은 있어도 부당행위로 문 닫은 사례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상황은 다르다. 경제적 민주화와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흐름에서 재벌도 예외일 수 없다. 기업정보가 낱낱이 공개되어 있어 독불장군식 경영이나 황제경영은 자신과 기업의 수명을 단축하는 변수가 되고 있다. 안하무인의 갑질 경영, 편법과 불법적인 부의 축재,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하청업체에 대한 부당거래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변화된 경제이데올로기를 ‘기업 옥죄기’라 항변하는 것은 시대착오일 뿐이다.
재벌 3세의 난제 중 하나는 혈족승계 과정에서 누적된 오너가족 내부의 이해충돌이다. 창업세대나 2세와 달리 3세는 경영권에 도전하는 오너가족의 구성원이 급속히 늘어나 분쟁의 위험성이 커져 있다. ‘승자독식’의 제왕적 지배구조는 오너가족의 사생결단을 초래하는 배경이다. 상당수 재벌이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형제간, 혈족 간 경영권 분쟁에 휩싸이는 까닭이다. 오너가족의 경영권 분쟁은 기업이미지는 물론 사업집중력을 약화시켜 기업성장의 동력 자체를 감소시킨다.
재벌 3세들이 ‘금수저’의 허업가(虛業家)가 아닌 진정한 실업가(實業家)로 성공하려면 거창한 미래비전의 제시에 앞서 경영환경의 변화에 발맞춘 투명성과 도덕성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다. 기업의 사유의식과 황제경영을 떨치고 공동체 의식과 상생정신을 갖는 것이 성공의 첩경일 것이다. 상속세를 줄여가며 지배력을 높인들, 편법과 탈법으로 재산을 불린들 사상누각일 뿐이다. 편법과 탈법의 결과는 두고두고 경영의 발목을 잡는 화근으로 남는다.
그런 점에서 야심찬 경영을 펼쳐야 할 재벌 3세들 가운데 상당수가 출발선부터 경영승계과정에서 빚어진 문제로 법정에 드나드는 장면은 보기에도 안쓰럽다. 수조 원의 상속세를 줄이려는 구실을 찾기보다 ‘한 푼도 깎지 않고 법대로 내겠다’고 선언하는 용기가 절실하다. 존경받는 재벌 총수들은 탁월한 혜안과 기업가 정신으로 선대를 넘어서는 업적과 부를 쌓은 인물이다. 경영권은 지분의 과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경심과 카리스마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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