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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가면놀이는 안됩니다 /조광현

질병 치료 않고 방치하면 ‘골든타임’ 놓쳐 위험하듯

뻔뻔함의 가면 쓴 정치인 개혁 않으면 사회 병들어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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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11-11 19:35:21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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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회진합시다.” 아침 일찍 A 씨가 엉거주춤 걸어 나와 간호사를 부른다. 간병인이 그를 부축해 병실로 들어가며, 회진은 식후에나 하자고 달래본다. 이 70대 후반 남자는 우리 병원에 입원한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다. 10년 전만 해도 모 종합병원에 근무하던 외과 의사였다. 그의 부인도 우리병원에 입원해 있다. 뇌출혈 후유증으로 의식이 혼미하고 호흡 곤란이 심해 인공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A 씨에게 어디 불편한 데 없느냐고 물으면, 그는 큰 소리로 항의하듯 말한다. “나는 아무 문제없어! 외국여행도 마음대로 다녀. 이탈리아, 스페인도 다녀왔어.” 그가 말한 외국여행은 오래 전 일이다.

치매환자들의 얼굴엔 어떤 가면 같은 그늘이 있는 듯하다. 그가 부인을 찾아가 “여보! 여보!” 애타게 부르다, 훅훅 흐느낄 때는 쓰고 있던 가면을 확 벗어버린 사람 같다. 여인은 가끔 눈을 깜박이긴 하는데 딱히 어떤 정서적 반응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들의 이상행동을 일종의 가면놀이로 보면 안타까움이 덜하다. 언젠가는 쓰고 있던 가면을 가볍게 벗고, 그들이 질병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바라는 마음은 부질없는 것인가. 그는 여전히 치매 환자 본연의 모습이다. 모 대학병원 병원장을 지낸 B 교수. 그는 뇌질환 수술 전문가로 지역사회에서 상당히 인정받는 의사였다. 외래진료 시간엔 대기 중인 환자들로 붐볐고, 정규 수술 스케줄은 수개월씩 밀리곤 했던 그가 어느 날 ‘다발성골수종’이란 난치병을 맞이했다. 그때, 당장 일을 그만두고 치료에 몰두하라고 모두들 권유했지만, 그는 자기를 덮친 질병에 전혀 구애받지 않으려 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병원 신경외과 의사였던 폴 칼라니티는 자전적 소설 ‘숨결이 바람 될 때’에서 자신에게 악성폐암이 재발했음을 알고 다음과 같이 술회한다. “나에게 죽음은 예상보다 느리게 올지도 모르지만, 원하는 것보다 분명 빠르게 닥쳐올 것이다. 이런 자각에 대한 명백한 반응 중 하나는 정신 없이 움직이려는 충동이다. 즉, 여행도 하고, 멋진 식사도 하고, 여태껏 접어둔 많은 소망을 성취하며 삶을 만끽하는 것이다.”

B 교수도 ‘정신 없이 움직이려는 충동’이 있었던 것 같다. 치유된다는 확신이 없었기에 오히려 구차하다고 여긴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평소처럼 환자 진료와 수술에 몰두하고 이곳저곳 여행도 다녔다. 그리고 1여 년 뒤 타계했다. 그의 성품으로 미뤄 나름 품위 있는 마무리를 선택한 것 같지만,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다.

그런데 사망하기 달포 전 어느 모임에서 만난 그가 나에게 귀엣말을 했다. “나이 들어 얼굴이 많이 초췌하니 가면이라도 쓰고 싶다”고. 그러나 그의 얼굴은 이미 가면이었다. 분명 골수를 파고드는 아픔과 절망 속에서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고 동석한 사람들도 그 사정을 모른 척했으니 같이 가면놀이를 한 셈이다.

평생 기초의학 교수로 지낸 C 선생이 최근 간질환이 심해 두문불출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평소 아주 강건했던 분이라 영문을 몰라 그에게 간단한 메시지를 보냈다. “존경하는 C 선생님! 의사도 다른 사람과 똑같이 병에 걸립니다. 병에 걸리면 남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의사의 지시를 받으며 병에 맞서 싸우면 됩니다. 육신을 지닌 생명체의 공통된 숙명이겠지요.”

생각건대 질병에 대처하는 의사의 행동은 다소 아이러니하다. 환자에게는 조기 진단, 조기 치료를 강조하면서, 정작 자신에 다른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 많다. 잘 알고 있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막상 난치병으로 확인되면, 앞으로 일어날 의학적 조치를 충분히 알고 있기에 더욱 그런 것인가. 그래서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가면을 쓰는 것일까. 그렇지 않은 이도 있겠지만, 어떤 질병이든 가면놀이로 일관하는 것은 치료의 기회를 놓치는 계기가 된다.

“C 선생님. 의사도 때에 따라 자신을 한 사람의 환자로, 아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선생님이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디 건강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요즘 우리 정부의 일부 고위관료와 위정자들의 가면놀이가 심상찮은 것 같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불을 보듯 뻔한 거짓말을 한다. 국회 국정감사 중계영상을 보니 가관이다. 온통 고성, 맞고함, 삿대질이다. 이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엔 더 심하다. 어느 논객은 이 시대의 정치를 “다수파 공작을 정의로 포장하는 정치” 라고 했다. 우기고 싸워서 이기기만 하면 정의가 되고 진리가 되는 현실이라고 개탄한다. 나라가 병들어 간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이러다 우리 사회가 정말 중병에 걸리면 어떻게 하나? 어떤 병이든 조기 진단, 조기 치료가 필요한 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와 사회에도 적용된다.

수필가·의사·온천사랑의요양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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