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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감성터치] 꿈꾸는 유목민 /강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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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11-08 19:48:45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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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박, 차크닉, 캠린이, 솔캠, 오캠. 이 중 뜻을 알고 있는 단어가 몇 개나 되세요? 힌트는 캠핑입니다. 그래도 쉽지 않지요? 다섯 단어는 캠핑 관련한 신조어입니다. ‘차박’은 차에서 숙박을 하는 것을 뜻하며 ‘차크닉’은 자동차와 피크닉의 합성어입니다. 자동차의 뒷좌석을 평탄화한 후 그곳에서 숙박을 하거나 피크닉을 즐기는 것이지요. 캠린이는 캠핑에 갓 입문한 새내기 캠퍼(캠핑+어린이), 솔캠은 솔로 캠핑, 오캠은 오토캠핑장에서 즐기는 캠핑을 의미합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으로 인해 해외 여행의 길이 막히고 사람 많은 곳을 꺼리게 되면서 캠핑이 여행의 새로운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텐트, 버너, 코펠같은 캠핑 용품의 판매가 급증했고 차박에 유리한 여러 차량의 판매도 호조를 띠고 있다고 합니다. 캠핑을 소재로 한 방송 프로그램도 부쩍 늘었습니다. 캠핑카와 캠핑 용품을 소개하는 ‘나는 차였어’와 캠핑카를 타고 국내 여러 곳을 여행하는 ‘바퀴달린 집’이 대표적입니다. 바야흐로 캠핑이 대세입니다.

지난 몇 달,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생활 반경이 부쩍 좁아지고 야외 활동이 많이 위축되었습니다. 지친 몸과 갑갑한 마음을 달랠 겸 혼자 또는 가족과 가까운 들이나 바닷가로 나가 열린 공간에서 잠깐의 자유를 만끽하는 게 유일한 낙이 되었습니다. 불편한 잠자리와 끼니 해결의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도 굳이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 안에는 여전히 유목민의 DNA가 내재해 있음을 발견합니다.

인류는 농업 혁명 이전까지 역사의 대부분을 유목민으로 살았습니다. 오래 전 수렵과 채집으로 식량을 구하며 이동 생활을 했던 조상들의 유전자가 지금까지도 전해져 우리는 산 너머와 너른 들판, 낯선 미지를 꿈꿉니다. 편한 집 두고 돈들여 캠핑장을 가고 따뜻한 방 대신 코끝이 시린 노지에서의 하룻밤을 선택한 당신이 진정 바라는 건 별 총총 뜬 하늘과 깊고 긴 파도소리, 그리고 자연 속에서 누리는 원시적 자유로움이겠지요.

소설가 배수아는 몽골의 서쪽 끝, 잊혀진 땅 알타이-투바에서의 유목민 경험을 담은 에세이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에서 유목의 자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거리와 시간, 원근과 사물의 실체에 대하여 아주 다른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나는 바늘이 없는 나침반의 한가운데를 영원히 서성이는 것 같았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음으로 특징지어지는 도시적 익명의 고독감과는 좀 다른 성질이었다’.

원소가 되어 사라져버려도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는 ‘나’의 분해를 온전히 체험하는 시간이었다는 소설가의 고백이 낯설지 않습니다.

얼마 전 동해안의 몽돌 해변에서 캠핑을 했습니다. 주중이라 한산하고 조용했습니다. 해가 지고 바람이 서늘해지자 텐트를 친 서너 팀이 약속이나 한 듯 화로대를 세우고 장작을 태웁니다.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이들은 말없이 불멍(장작불을 보며 멍하게 있는 것)을 합니다.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와 짙은 나무 냄새가 전부입니다. 문득 그들에게서 불을 둘러싸고 앉아 사냥한 고기를 구워 먹으며 추위를 피하던 원시 부족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밤바다에 어울리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이도 있습니다. 오래전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던 부족의 주문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지금을 사는 저들의 모닥불과 노래에는 무슨 바람이 들어있을까요? 위기의 시대를 견딜 지혜를 구하고 모두의 생존과 안녕을 바라는 마음 아닐까요. 소박하지만 경건한 제의에 담긴 구원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가혹한 기후를 견디며 거친 땅을 가로질러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던 옛 조상들의 끈기와 극복의 유전자가 우리에겐 있습니다.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갈 것이므로 지금을 좀더 견뎌야 하겠습니다. 새로운 내일을 꿈꾸던 유목민의 마음으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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