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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아이린과 찬열을 위하여 /김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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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11-02 19:05:44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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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레드벨벳의 아이린. 얼마 전 포털 검색어 순위를 다투며 엄청난 양의 기사가 쏟아졌다. 곧이어 보이그룹 엑소의 찬열이 또 한번 같은 과정을 거쳤다. 모두 사생활 논란. 전자는 성격이 나쁘다는 폭로에 대한 반응이었고 후자는 이성관계 문제다. 정상급 인기인들이니 개인사가 화제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비판 일색의 기사들, 극언으로 도배된 소셜 미디어상의 말폭탄들, 심지어 그룹 퇴출요구까지 접하면서 깊은 탄식을 금치 못했다. 내 세대에게 익숙한 1970~80년대식 국가통제, 일률적 규범의 강제가 대중 또는 팬층에게 전이된 느낌이 들었다. 한국의 대중은 연예인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걸까. 내가 이해한 대로 보면, 음악성에 더해 소위 인성이라 부르는 훌륭한 삶의 자세를 요구하는 듯하다. 그러니까 실력 플러스 멋진 외모, 착하고 반듯한 성품 더 나아가 나라사랑, 효자효녀에다 기부 선행, 구도자적으로 엄격한 성관념, 학벌까지 잘 갖추면 금상첨화가 된다. 대중예술이 일종의 환상을 파는 직종이려니 하다가도 ‘이건 너무한 것 아니냐고!’ 하는 영화대사가 튀어나온다. 이미지 메이킹과 상징조작이 연예 마케팅의 한 기둥이련만 그 요구수준이 공급자, 수요자 모두에게 임계치를 벗어나 보인다. 대체 그렇게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출판평론가 타이틀로 활동했던 20여 년 간 엄청난 분량의 인물평전을 읽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뛰어난 예술가는 작품을 칭송할지언정 사적 친분을 맺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각별히 좋아하는 베토벤이나 말러를 만났다면 한나절도 편안히 지내지 못했을 것이다. 숱한 밤샘의 추억을 안겨준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나 호로비츠와 절대로 친구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장인 혹은 아티스트란 어딘가 많이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그럴 수밖에. 한 인간은 시간과 에너지의 물리적 제약 아래 산다. 주위 사람들에게 잘 하고 좋은 일하는데 에너지 투여하면서 언제 상상초월의 성과물을 내겠는가. 내가 사랑하는 예술가들의 이른바 ‘인성’은 이기적이고 편벽되며 심지어 비도덕적이고 반인륜적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예술은 바로 그렇게 평범성과 규범성의 범주를 벗어난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당신이라면 반 고흐라는 인물의 성품을 좋아할 수 있겠는가.

아이린, 찬열을 베토벤에 견주는 것도 그들을 비호하려는 것도 아니다. 내 관심은 케이팝의 앞날에 있다. 다 알다시피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의 대성공으로 케이팝은 지금 절정의 꽃을 피우고 있다. 정말 엄청나다. 그런데 과연 영미팝 곁에 또 하나의 스탠더드이자 메인스트림이 된 라틴팝처럼 정착될 것인가. 아니면 한때 세상을 휩쓸다 스러진 유로팝의 길을 걸을 것인가. 영화로 치면 반짝 타오르다 재가 되어 버린 홍콩느와르의 운명이 되면 어쩌나. 유로팝이나 홍콩느와르 모두 동종교배의 비슷비슷함이 반복되다 식어버린 케이스다. 팝 애호가라면 다음 뮤지션들의 ‘인성’을 알 것이다. 카디 비, 아리아나 그란데, 레이디 가가, 에드 시런, 마룬 파이브…. 한 마디로 다종다양의 인격체가 공존한다. 극단적 선정성을 구사하는 악녀, 청순한 여우, 파격적 별종, 선량한 순수청년, 건강함이 주는 쾌적함…. 케이팝이 국내인기 차트에만 머무는 장르라면 앞서 거론한 온갖 도덕적 요구를 해도 좋다. 그게 한국식이라 여겨 꾸미고 연출된 미덕을 받아들이는 걸로. 하지만 히트하면 유튜브 1억뷰를 쉽게 넘는 세계인의 음악이 오늘의 케이팝이다. 한국식 도덕관념과 인간성의 틀에 갇힌, 그래서 착함을 연기해야 하는 아이돌들로 이 세계적 열광을 지속시킬 수 있을까.

사사로운 얘기를 하자면, 나는 그 아름다운 외모에 새침한 아이린이 때론 불같이 화내고 주위를 괴롭히는 성질이 있다는 폭로가 사실이길 바란다. 그녀의 히트곡 ‘사이코’, ‘몬스터’와 너무도 잘 어울려 음악의 진정성이 훨씬 짙게 다가온다. 또한 찬열을 성직자나 교육자로 여겨본 적이 없는 터라 전 여친과의 ‘바람둥이’ 공방이 어찌됐든 그의 노래를 듣는데 지장을 받지 않는다. 그건 그들 간의 남녀문제다.

우리에겐 많은 자유가 있다. 뮤지션이 도덕군자여야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좀 불량스러워 보이는 빅뱅을 방탄보다 더 최고로 치는 나도 있다. 각자 취향대로 좋아하면 안 될까.

시인·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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