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의 뒷맛이 씁쓸하다. 지난 26일 끝난 21대 국회 첫 국감 얘기다. 워낙 엄혹한 시대라, 종전보다는 그나마 개선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름에 걸맞게 국정의 잘잘못을 준엄하게 따지고, 정책적 대안도 제시하는 취지가 무색할 정도다. 민생·개혁을 위한 마당이 전개되기는커녕 정쟁의 장이 펼쳐지고, ‘맹탕’이란 비판과 함께 자질을 의심하게 만드는 막말 공방의 구태도 어김없이 재연되었으니 말이다.

자치사무에 대한 국감을 둘러싼 논란도 볼썽사납기는 매한가지였다. 갈 길이 한참 먼 우리 지방자치의 현주소가 그대로 드러난 듯해서다. 논란의 발단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주장에서 비롯됐다. 그는 국감을 앞두고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즉, ‘국회는 국정을 감사할 권한이 있을뿐 지방정부의 자치사무에 대해서는 감사권한이 없다’는 거다. 그러면서 ‘내년부터는 자치사무에 대한 국감 사양을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겠다’고 썼다. 이 같은 발언이 그의 국감 거부로 비춰지면서 파장이 일었다.

현행 국정감사·조사에 관한 법률로 보면 그의 주장은 틀린 게 아니다. 지방자치단체 중 특별시와 광역시·도는 국회의 국감 대상으로 명시돼 있지만, 감사 범위가 엄연히 정해져 있어서다. 다시 말해 국가위임사무, 그리고 국가가 보조금 등 예산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한정한 것이다. 이는 중앙정부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자치단체 고유의 사무 즉, 자치사무는 국감 대상이 아님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논란이 생기는 건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서다. 자치사무 중에서도 상당 부분이 정부 돈을 받으니, 어디까지를 국감 대상으로 봐야 할지 모호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회가 마음만 먹으면 감사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쉬운 일이다. 지나친 자료 요구로 반발을 사는 것도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기초자치단체장들의 업무추진비 내역까지 내놓으라고 한다. 그러니 시할머니가 손자며느리 부엌조사까지 요구하는 격이란 비판이 나오지 않나.

사실 자치단체의 국감 대상 여부는 오랜 논쟁거리다. 1991년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부터 끊이지 않는다. 자치의 본뜻에 위배된다는 쪽과 국회 권한인 국감을 받는 게 옳다는 쪽이 맞서왔다. 그러나 지방은 국감 반대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과거 부산 등 전국 광역시·도의회에서는 반대 결의도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7년 전 진주의료원 문제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 때는 경남도지사가 지방의 고유사무라며 출석을 거부한 적도 있다.

그도 그렇지만, 이런 생각마저 든다. 우리 국회가 과연 자치단체를 감사할 염치가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거다. 입법부로서 지방자치 발전을 위한 제도와 토대 마련에 적극 나서는 건 고사하고 되레 발목을 잡거나 미온적이어서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 법률안’이 단적인 사례다. 이 법안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여야 정당의 무관심 속에 자동 폐기됐다가 다시 제출된 상태다. 하지만 지금 국회에서도 별 진척이 없다. 국회가 지방의 자율·자립성을 강화해 주지도 않으면서 국감으로 상전 노릇만 하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치분권이 제대로 되면, 지방사무 감사는 해당 지방의회의 몫이다. 그 외 정부·감사원 감사도 있다. 여기에다 국회까지 더하니 과잉·중복 감사라는 지적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지방사무 국감을 점차 없애는 것이 온당하다. 당장 힘들다면 최소화하기 바란다. 아울러 국가 예산 지원 범위와 위임·자치사무 구분이 어려운 현행법의 자치단체 국감 규정부터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

어제가 지방자치의 날이었다. 2012년 자치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고 그 성과를 공유하기 위한 법정 기념일로 제정한 이래 8년째다. 민선 단체장 시대가 열린 지도 올해로 25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자치는 고사하고 소멸위기에 놓인 지역이 수두룩한 실정이다. 부산만 해도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웃도는 인구 자연감소가 35개월 연속 진행 중이다. 올해 1~8월에는 그 규모가 지난해 동기간 대비 1800명이나 더 많은 걸로 나타났다.

우리의 지방자치는 그야말로 부끄러운 수준이다. 무늬만 그럴듯하다. 국감 논란에서 보듯이 지방을 중앙 통제의 틀에 계속 가둬놓으려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자체 간 경쟁을 부추기는 각종 공모사업만 봐도 중앙이 재정으로 지방을 쥐락펴락하는 꼴이다. 국가사무의 지방 일괄이양도 다를 바 없다. 일과 권한을 넘겨주는 건 좋으나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부담만 안긴다. 당장 내년 1월부터 국가사무 400개를 이양하는데, 그 비용은 내년 것만 정해졌을뿐 항구적인 재원확보책은 미비한 상태다. 결국에는 재정분권이 요체이나 그 실현은 멀기만 하다. 지방자치의 날이 달갑지 않고 씁쓸한 이유다.

선임기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