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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화의 미술여행] 비극의 주인공이 된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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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10-27 19:21:45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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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예로부터 문학가와 예술가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소재 중 하나였다. 죽는 주인공이 어릴수록, 아름다울수록, 비극적일수록 선호되었다. 19세기 영국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의 대표작에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처녀가 꽃을 꺾어 든 채 강물에 빠져 죽어가는 모습이 담겨있다. 그런데 이 장면, 어디서 본 듯하지 않은가? 맞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등장하는 바로 그녀, 오필리아다.
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아, 1851-1852년.
그림은 ‘햄릿’의 4막 7장에 나오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햄릿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사실을 안 오필리아는 그 충격으로 미쳐버린다. 실성한 채 강가로 간 그녀는 꽃을 꺾다 미끄러져 강물에 빠진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되어버린 이 기막힌 상황. 오필리아는 더 이상 살 마음이 없다. 강물에 떠내려가면서도 허우적거리기는커녕 너무도 평온하게 노래를 흥얼거린다. 몸은 물속으로 점점 깊이 가라앉는데도 말이다. 밀레이는 오필리아의 죽음을 고통이나 슬픔 대신, 아름답고, 극적이고, 관능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화가는 오필리아가 바로 우리 눈앞에서 죽어가는 것처럼 생생하게 재현하기 위해 무척 고심했던 듯하다. 진실한 자연 묘사를 중시했던 그는 원하는 배경을 찾아 캔버스를 들고 런던 근교 서리 지역의 강가로 향했다. 야외에서 매일 11시간씩 다섯 달 동안 자연을 직접 관찰하며 그렸다. 6월에 시작한 작업은 11월에 마무리되었다. 오필리아의 모습은 배경을 먼저 완성한 후 런던에 있는 작업실로 돌아와 그렸다.

그림 속 모델은 당시 19세였던 엘리자베스 시달이다. 뛰어난 미모로 화가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인기 모델이자 아마추어 화가였다. 시달은 강에 빠진 포즈를 취하기 위해 옷을 입은 채 물을 가득 채운 욕조 안에 들어가 있어야 했다. 그것도 한겨울에 매일. 기름 램프로 욕조 아래에서 물을 데웠는데, 하루는 밀레이가 작업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램프가 꺼진 걸 알아채지 못했다. 물이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시달은 화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감기에 걸려 심하게 앓았지만, 그만큼 프로정신이 강한 모델이었다.

오필리아 주변에는 그녀의 운명을 상징하는 다양한 식물과 꽃들이 그려져 있다. 쐐기풀은 고통, 데이지는 순수, 팬지는 허무한 사랑, 버드나무는 버림받은 사랑, 그리고 오필리아 손 근처에 그려진 붉은 양귀비는 죽음을 상징한다. 사실 양귀비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에는 없는 꽃이지만, 죽음을 강조하기 위해 화가가 추가한 것이었다.

모델은 그림 속 주인공을 닮는 걸까. 시달의 운명은 오필리아만큼이나 비극적이었다. 시인이자 화가였던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와 결혼하지만, 남편의 외도와 사산의 고통으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아편 중독자가 되었고, 결국 33세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밀레이는 자신이 그린 양귀비가 모델의 운명을 예언하게 될 줄 짐작이나 했을까.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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