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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과 법률] 우리는 왜 남에게 속는가 /이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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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10-21 19:28:33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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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난 형사 법정에 있다. 법정엔 범죄 혐의를 받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범죄는 가벼운 경죄와 무거운 중죄로 나뉜다. 중죄를 범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다. 먼저 분노다. 화를 참지 못하여 사람을 때리고 심지어 죽이기도 한다. 다음으로 욕정이다. 순간적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여 성범죄 사건을 일으킨다. 마지막으로 탐욕이다. 돈과 물건에 대한 욕심이다. 사기 범죄가 대표적이다.

사기는 거짓말로 시작한다. 속이고 속는 것이다. 사기는 폭행과 비교된다. 폭행은 남을 때리는 것이다. 사기는 남의 신체에 손을 대지 않는다. 그저 마음을 빼앗아 혼란하게 만든다. 합리적인 이성을 잃게 하는 것이다. 사기에 따르는 피해는 생각보다 가혹할 수 있다. 속는 순간 모든 재산을 잃을 수 있다. 심지어 자신의 생명마저 버리는 경우도 있다. 세상에 쉽게 벌리는 돈이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거짓말로 쉽게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 사기꾼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몇 마디 거짓말로 돈을 쉽게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사기는 남을 속여서 돈이나 물건을 받아가는 것이다. 도둑은 남의 것을 몰래 훔쳐가지만, 사기꾼은 남이 주는 것을 그냥 받아간다. 남은 그냥 주지 않는다. 속아서 주는 것이다. 우리가 속는 이유는 상대방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누구나 한 번쯤 살아가면서 사기를 당한 경험을 갖고 있다. 신뢰의 배신을 맛보게 된다. 인생에서 처음 당하는 사기는 우정과 사랑을 빌미로 한 차용금 사기다.

친구나 연인으로부터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차마 거절하기 힘든 절실한 사정도 듣게 된다. 아이 수술비가 필요하다거나 지금 당장 결제할 급전이 필요하다는 하소연이다. 그래도 돈을 빌려줄 것인지 잠시 망설인다. 하지만 이런 말을 듣는 순간 무너지고 만다. ‘우리가 이런 사이였구나. 내가 지금까지 잘못 생각을 했다. 네게 부탁해서 너무 미안하다.’ 게다가 빌려 달라는 돈도 겨우 100만 원 정도다. 속는 셈 치고 돈을 빌려준다. 그렇지만 빌려준 돈이 적을수록 다시 돌려 받을 확률은 낮아진다. 돈을 회수하지 못하면 자신의 인생 노트에서 그 사람을 지우면 된다. 한 번쯤 겪어야 할 아픈 경험으로 여길 수 있다. 사기는 친구나 연인, 지인이나 친척 등 가까운 사람의 신뢰를 배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잘 알고 믿을 만한 사람의 부탁을 받으면 이를 거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탐욕이다. 빌려 달라는 돈의 액수가 수천만 원, 수억 원 단위로 커지면 조심해야 한다. 돈을 빌려주면 이자로 월 2%를 주겠다고 한다. 속는 셈 치고 100만 원을 빌려주었는데, 한 달 뒤 원금과 이자 2만 원을 변제받았다. 이번에는 1000만 원을 빌려주었고, 한 달 뒤 원금과 이자 20만 원을 돌려 받았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든다. 만일 1억 원을 빌려주면 한 달 이자로 200만 원을 받는다. 눈앞에 큰 이익이 보이면 이성을 마비시킨다. 자신이 갖고 있는 돈 5억 원을 모두 빌려준다. 한 달 이자만 1000만 원이다. 하지만 한 달 후 돈을 빌려간 사람을 찾을 수 없다. 벌써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차용증을 받아 두었지만 이것도 휴지 조각에 불과하다. 어느 날 갑자기 호주머니에 돈이 찰랑찰랑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높은 이자나 배당, 수익이라는 말에 마음이 흔들리면 사기를 당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안이다. 몸이 아프거나 곤란하고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도 잘 속는다. 불안이 커지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을 찾는다. 굿을 하거나 기도를 하면 불안이 없어지고, 앞날도 잘 풀릴 것 같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스스로 중심을 잡지 못하면 사기를 당할 수 있다.

우리는 왜 남에게 속는가. 잘 속는 사람은 바로 신뢰와 탐욕 그리고 불안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어디에서 속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변호사인 당신도 과연 속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변호사·법무법인 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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