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감성터치] 의령 빗방울 화석지에서 /김정화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10-11 19:55:27
  •  |  본지 2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다시 한번 와보고 싶었다. 한가로운 시골 마을 길 모퉁이에 제법 편편한 너럭바위가 펼쳐져 있다. 돌에 빗방울 자국이 새겨진 곳, 찰나의 순간이 그대로 멈춘 영원의 세계, 일억 년 전에 만들어진 의령 빗방울 화석지(천연기념물 제196호 경남 의령군 서동리 함안층 빗방울자국)이다.

자세히 보니 바위 곳곳에 콩알만 한 물방울 자국이 오목오목 파여 있다. 여리고 둥근 몸이 천길 벼랑으로 떨어져 내린 바닥이다.

멈춘 빗방울이 금방이라도 탱탱하게 몸을 일으킬 것처럼 널브러졌다. 극심한 가뭄 뒤에 내렸던 빗줄기가 진흙 위에 수직으로 내리꽂힌 자국이다.

그 위에 퇴적물이 쌓이고 지층이 굳어지면서 마침내 빗방울 화석으로 재탄생된 것이라고 한다. 중생대 백악기의 어느 하루, 지상에 내디딘 물의 발자국들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 빛나던 빗방울이 온몸을 바쳐 이루어낸 생의 업적이니, 흙이 물을 받들고 거두어 빗자국을 지켜내었다.

화석이 된 빗방울은 햇살을 품고 물결을 안은 채 세월을 이겨낸다. 빗소리를 듣고, 사람들의 눈동자를 담고, 바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으리라. 빗방울이 새겨놓은 상형문자가 검은 반석 위에 선명하다. 억겁의 언어일까, 무량의 소리일까. 빗줄기가 쓴 육필 원고라고 이름 붙여 본다.

세상에 흔적 없는 것이 있을까. 잎이 떨어진 가지 위에 엽흔이 남고, 새들이 지나간 자리에 발 도장이 찍히며, 상처 난 가슴에는 생채기가 생긴다. 강물도 물의 지문을 그리고, 모래밭에는 바람의 문양이 들썩인다. 여름이 지나간 풀밭에 씨앗들이 영글듯이 흘러가는 것은 모두 자국을 남기는 법. 빗줄기가 오목새김 되어 우흔으로 굳은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는지도 모르겠다.

한때 붓글씨를 썼다. 스승은 체본을 쓸 때마다 붓을 가다듬는 시간이 길었다. 붓끝으로 먹물을 몇 차례나 찍었다 놓았다 전주르며 애를 태웠는데, 첫 먹물 한 방울이 화선지 전체를 다스린다 하였다. 의기충천한 젊은 날이었으니 큰 것만 눈에 들고 작은 것은 안중에도 없을 때였다. 어설픈 실력으로 예서체 한 장을 후다닥 휘갈겨버리는 내 글씨를 두고 붓이 없고 먹이 없다고 하셨다. 필법만 익히려는 성급함을 누르고 초발심(初發心)을 가르쳐 주려 한 깊은 뜻을 그때는 몰랐다.

첫 번째 물방울을 경배한다.

그것이 먹물이 되든 빗방울로 흘러내리든, 허망한 운명을 예감하고도 처음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은 가장 용감하다. 여름 장마는 빗방울에서 시작되고, 땅의 가을은 이슬이 내리는 것으로부터 번지며, 이별도 눈물방울이 예고하지만 모두 물기가 마르면 지나가게 된다. 덧없이 잊히고 사라지는 것들이 물방울이라면, 인간 개개인 또한 언젠가 사위어들 수밖에 없는 한낱 물방울 같은 존재가 아닌가.

그러나 물방울 하나에도 우주가 들어 있다고 했다. 하나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 속에 하나가 존재하는 까닭이다.

노르웨이 신화 ‘에다’에도 천지창조는 물방울에서 시작되었다고 되어 있다. 물방울에서 태초의 거인과 암소가 태어나고 거인의 땀에서 또 다른 거인들이 탄생한다. 우주 전체가 물 한 방울에서 생성되었다고 하듯이, 이곳 빗방울 화석 하나하나마다 무한의 세상이 잠들어 있을 터이다.

그동안 많은 화석을 만났다. 중생대 공룡 발자국은 물론이고 낙관을 찍은 듯한 물떼새 발자국 화석도 보았으며, 바다의 잔물결 흔적이 굳어 연흔이 펼쳐진 해안은 몇 번이나 찾아갔다. 연구자들은 발자국 화석을 따라 생활 습성을 추정하고, 굳어버린 물결 모양만으로 수심과 물흐름도 밝혀내며, 빗방울 자국의 깊이만 보고도 빗줄기의 속도를 가늠한다.

훗날 현생의 인간도 화석으로 발견된다면, 후세인들은 얼마만큼이나 과거를 유추할 수 있을까. 뇌와 가슴 속을 관찰하고 생각과 속마음까지 측정해내는 것은 아닐는지.

잔뜩 흐렸던 하늘에서 후드득 빗줄기 쏟아진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거친 것을 다스리듯 빗방울이 화석 바위를 내리친다. 석종 소리 청아하다.

문학평론가·수필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르노삼성, 전직원 대상 희망퇴직
  2. 2검찰, 경찰서류 오탈자에 잇단 시정 요구…수사권 조정 트집?
  3. 3고성보건소 근무시간 직원들 소장 생일파티
  4. 4납품계약 뒤집고 단가인상…대기업 쌍용양회 갑질
  5. 5기장 집값 상승률, 광역시 구·군 중 최고
  6. 6부산 KIOST(해양과학기술원) 핵심조직 세종행, 균형발전 ‘찬물’…해수부 ‘묵인’
  7. 7부산서 수소차 사면 최대 3450만 원 지원
  8. 8민주 34.5%, 국힘 29.9%…부울경 지지율 뒤집어졌다
  9. 9가덕 찾은 이낙연 "특별법 임시국회내 반드시 통과"
  10. 10 띠와 생년으로 확인하세요(2021년 1월 22일)
  1. 1민주 34.5%, 국힘 29.9%…부울경 지지율 뒤집어졌다
  2. 2여당 지도부 부산 보선 화력 지원…가덕도로 반전 노린다
  3. 3야당 당내 예비경선 9명 후보 등록
  4. 4야당 정진석 “단합·결속이 부산의 승리 비책”
  5. 5김영춘은 정책대결, 박인영은 親盧행보, 변성완은 출마시동
  6. 6박형준 “정치 우습게 보나” 전성하 “총선 책임론 없나” 설전
  7. 7한정애 “가덕신공항, 대기오염·물류비 줄이기 위해 필요”
  8. 8정의용 발탁 남북미 대화 복원 의지…親文 체제로 국정 강화
  9. 9국민의힘 유재중 전 의원 부산시장 보선 불출마
  10. 10“모든 아동학대 신고 경찰서장이 확인”
  1. 1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
  2. 2기재부 ‘자영업 손실보상제’ 난색에…정 총리 “법제화하라”
  3. 3연금 복권 720 제 38회
  4. 4청약 계약취소건 ‘줍줍’ 막는다…3월부터 지역 무주택자에 공급
  5. 5홈쿡족 늘자 프리미엄 오일·고급 조미료 잘 나간다
  6. 6주가지수- 2021년 1월 21일
  7. 7택배기사에 분류작업 못시킨다…심야배송도 제한
  8. 8다주택자 증여세 할증…정부, 과세 도입 검토
  9. 9삼진어묵, 저염으로 온라인 시장 공략
  10. 10크리에이터·화상회의 수요 겨냥 SSD 출시 경쟁
  1. 1 뇌경색증 김호철 씨
  2. 2고성보건소 근무시간 직원들 소장 생일파티
  3. 3창원월영 ‘마린애시앙’ 마지막 할인 분양
  4. 4오늘의 날씨- 2021년 1월 22일
  5. 5의인 이수현 씨 20주기…부산서 추모행사
  6. 6검찰, 경찰서류 오탈자에 잇단 시정 요구…수사권 조정 트집?
  7. 7백신접종센터, 기초단체당 1곳 이상 운영
  8. 8유튜버 산실 김해 ‘청년허브’ 3월 문연다
  9. 9하동군 출산장려금 상향…넷째 낳으면 3000만 원
  10. 10양산시, 장기간 방치 ‘웅상프라자’ 활용 방안 찾는다
  1. 1KBO 스프링캠프 코로나 음성 확인돼야 참가
  2. 2아이파크 내달 28일 이랜드와 홈 개막전
  3. 3박지성, 전북 행정가로 K리그 입성
  4. 4최준용이 ‘뒷문’ 닫고 한동희 ‘대포’로 끝낸다
  5. 5부산서 다시 뭉친 ‘강·정·현(강영웅 어정원 천지현)’…“신인돌풍 기대하세요”
  6. 6왕따주행 논란 김보름, 노선영에 2억 원 손배소
  7. 7개최냐 취소냐…도쿄올림픽 운명, 3월 IOC 총회 손에
  8. 8아이파크, 브루노 등 코치 4명 선임
  9. 9오죽했으면 대출받을까…거인 최악 ‘보릿고개’
  10. 10롯데 책임질 외인 3인방 입국
'4·7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 릴레이 인터뷰
진보당 노정현
'4·7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 릴레이 인터뷰
국민의힘 이언주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축소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선택
탈산업화시대 연착륙을 위한 필수조건
기고 [전체보기]
에코델타시티에 스마트 응급외상시스템을 /이상현
수소경제가 답이다 /이수태
기자수첩 [전체보기]
문재인 대통령 ‘123분 신년회견’에 지역은 없었다 /정유선
비판에 귀 닫은 부산교육청…이 기사도 감출건가요? /김화영
김석환 칼럼 [전체보기]
‘능력주의’와 ‘예타만능’이라는 거짓말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해 뜨는 아침, 겨울 산의 속살을 보라
정치적이기엔 너무도 문명적인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관현맹인과 여악의 전통
동래부동헌에 풍악이 울리다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2+1 책임제’ 족쇄로 안 남으려면 /유정환
‘신산업 도시 부산’의 필요조건 /이석주
도청도설 [전체보기]
죽어야 태어나는 아이
간호사의 위상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가을의 시간을 맞으며
이주의 시대와 문학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불로초 감귤
북어보푸라기
사설 [전체보기]
새 질서 예고한 바이든…전방위적 변화 적극 대처해야
진통 끝 출범 공수처, 정치적 중립 확보에 미래 달렸다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공유경제에 대한 오해와 진실
원격의료 도입의 조건
이수훈 칼럼 [전체보기]
비핵평화, 중단없이 가야 할 길
한반도 비핵화는 어떻게 되나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최고의 기쁜 날
퇴폐미술의 낙인
이홍 칼럼 [전체보기]
카리스마에 대한 오해
독성 리더십
장병윤 칼럼 [전체보기]
알바트로스, 오 알바트로스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서울에서 멀어지면 불안한 나라
코로나 봉쇄령 속에 맞은 연말연시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불멸의 연인
연말 그리고 크리스마스 시즌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겨울나기
메리 크리스마스
특별기고 [전체보기]
부산 코로나 병상 부족 현실화…생활치료센터 설치 힘 모아야 /고광욱
우리의 희생 기억해준 한국에 감사 /빈센트 커트니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김홍도의 ‘논을 가는 소’
김홍도의 ‘주상관매도’
  • 유콘서트
  • 18기 국제아카데미 모집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