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이고 싶다. 많은 이가 한 번쯤 꿈꾼다. 이마에 패인 삶의 흔적만큼 간절할 것이다. 꽃이 지면 그 자리에 열매가 맺는 법. 지금 가진 것에 목맬 이유는 없다. 내려놓고 나면 새로운 게 생길 것이다. 세상이 어디 영원한가, 길지도 않다, 마음 끌리는 대로 살아볼 만하다.
그런데도 대부분 꿈만 꾼다. 놓지 못한다. 오히려 더 가지려 한다. 욕심이란 말이 괜히 생겼겠나. 잠잘 때 했던 다짐은 깨고나면 늘 달라진다. 삶은 현실인데, 세상은 정글인데. 아차 하면 낙오 아닌가. 모난 돌이 정 맞는다. 튀지 않는 게 상책이다. 꿈이 밥 먹여주나. 배부른 사치다. 손에 잡히지도 않는 영혼을 고집하다가는 곧 현실 부적응 인간으로 찍힌다. 현실은 나의 처지를 고려해주지 않는다. 살아남는 건 내 몫이다. 가늘고 길게 살아야지, 다짐하고 또 한다. 그래서 꾸역꾸역, 어제 같은 오늘을 내일도 산다. 사람은 대개 그렇다.
그런 면에서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훌쩍 떠나다니, 대단하다. 가진 것이 너무 많지 않나. 그만큼 잃을 게 많다는 이야기다. 누리기 위해 무언가를 내려놓아야 한다. 대가를 치러야 하는 신분이기에. 하지만 결행했다. 그의 영혼이 아주 자유롭게 느껴진다. 순전히 나의 생각이다.
“내 삶 사는데 다른 사람 때문에 양보해야 하나.” 그런 말을 하는 그가 부럽다. 그것도 예순 중반의 노교수가 아닌가. 공동체 문화에 익숙할 법한 세대다. 그는 달랐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남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는 말만 하지 않았다. 실행까지 했다. 그는 요트를 사러 미국으로 떠났다. 외교부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발령한 특별여행주의보는 고려할 1순위가 아니었다. 국민에게 여행 자제를 당부하는 부처의 장관은 그가 아니다. 강 장관이다.
개인 삶이 먼저였던 것 같다. “코로나가 하루 이틀 내로 없어질 게 아닌데, 매일 집에만 있을 수 없고 정상 생활을 어느 정도 해야 한다.” 개인위생은 철저히, 알아서 챙기면 될 일이다. 마스크를 충분히 챙겨간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고 해도 그의 행위와 말은 보통 사람의 정서와는 분명 거리가 있다. 그의 언행 덕분에 강 장관은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미뤄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코로나19로 모두가 공동체 안전을 위해 절제된 개인 삶을 강요받는 요즘이어서 더욱더 그렇다. 강 장관은 많은 걸 잃을지도 모른다. 유감 표명과 사과는 기본이다. 자칫 잘못 대응하다가는 직이 날아갈 판이다. 그의 결행이 그래서 더 존경스럽다. 잃고 얻음을 계산하지 않은 듯해서다.
그의 선택에 뒤따를 비판과 비난 정도는 충분히 예상했을 터이다. 그 자신은 장관의 배우자이기 앞서 대학 명예교수다. 그도 공인이다. 더욱이 나라를 위해 일하는 강 장관이 받는 세금을 쓴다. 지켜야 할 의무가 그만큼 많다. 세상인심은 그렇다. 누리는 사회적 지위만큼 책임을 요구한다. 우리 사회는 공인과 그 가족의 절제된 삶을 당연한 의무처럼 여긴다. 일탈이라고 다 같은 일탈이 아니다. 평범한 이와는 다르다. 세상의 기대에 조금만 벗어나도 비난은 쏟아진다. 공인의 삶은 대중이 들여다 보고 있어 숨기기가 힘들다.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는 수밖에 없다.
억울해할 것은 없다. 아니라고 생각되면 지위를 내려놓으면 된다. 세금 받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나의 일이든, 가족의 일이든. 여기에 법과 제도를 어기지 않았다는 주장은 끼어들 틈이 없다. 배 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견디지 못하는 게 사람 마음이다. 불평등은 수준이 아니라 차이의 문제다. 영혼이 자유로운 건 그의 선택이지만, 그에 따른 세상의 불평불만은 감내해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귀족은 의무를 진다’는 뜻의 프랑스어다. 엘리트주의적이고, 선민의식이 담겨 있다. 정작 프랑스에서는 사실상 사어(死語)가 된 지 오래라고 한다. 그런데 뒤늦게 안 우리가 그 말을 더 즐겨 쓴다. 유교적 정서와 맥이 통해서일까.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부와 권력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더 엄격하게 요구한다. 우리는 상위 계층을 군자라고도 부른다. 먼저 모범을 보이는 이들이란 뜻이 담겨 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한 사람만이 가정을 다스릴 수 있고, 가정을 다스릴 수 있는 자만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며,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자만이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릴 수 있다)라는 말에도 우리는 익숙하다.
어쨌든 부럽다. 오늘도 잠자리에서 다짐할 것이다. 나도 이제 준비해야겠다고. 하지만 깨면 다시 일상이다. 어제 같은 오늘을 내일 또 반복한다. 그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되려면 갖춰야 할 것이 많은 탓이다. 떠나도 될 만큼의 경제력부터 걱정한다. 어쩔 수 없다. 세속에 숨죽여 사는 게 딱 체질이니까. 상상하는 것에 만족해한다. 그게 익숙하고 편하다. 그게 우리다. 이 교수와 다른 우리다.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