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는 생명체에 본질적으로 내재된 본능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 중 스스로의 결정으로 삶을 마감하는 행위는 오직 인간만이 한다. 자살은 인간만이 행하는 특별한 실존적 결단이다. 불행하게도 현대 사회에서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사실상 ‘결단을 당한’ 자살이 늘어나고 있다.
연 평균 노동시간이 OECD 국가 최상위권의 불명예를 안고 있는 한국의 살인적 노동환경은 익히 알려져 있다. 시급 1만 원도 안되는 최저임금 인상이, 대기업에까지 문제를 일으킬 정도로 낮게 산정된 기본급 탓에, 근로자들은 야근과 휴일근무를 최대한 많이 해야 어느 정도 생활임금을 맞출 수 있었다. 사회 전반적으로 야근을 장려하는 분위기도 한 몫 했다. 근로기준법대로 8시간을 근무하고 ‘정상 퇴근’ 하는 것이 ‘칼퇴근’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불리고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어느 정치인의 구호가 전 국민의 공감을 얻는 장시간 노동 사회에서, 근로자들이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라곤 ‘업무’ 외엔 달리 찾아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과도한 업무와 실적 경쟁, 상사나 동료의 괴롭힘, 구조조정 등 원인도 다양하다. 잠자는 시간만 빼고 삶의 대부분을 노동을 하다 스트레스로 자살에 이르렀다면 당연히 노동과 관련된 스트레스가 그 이유가 되었을 가능성을 가장 먼저 의심해봐야 할 것이다.
업무상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이나 정신적 이상으로 자살에 이른 경우, 그 근로자의 죽음은 산업재해로 인정(산재보험법 제37조 및 동법 시행령 제36조)된다. 유족들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연금과 장례비 등을 지급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자살 사건은 쉽게 산재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사회 평균인 입장에서 자살까지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산재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인데, 추측이지만 산재 사망시 공단이 유족에게 지급해야 하는 급여가 다른 산재 사건보다 훨씬 크다는 점도 고려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하지만 대법원은 ▷업무상 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우울증세가 악화되고 ▷업무 외 다른 요인으로 인해 이와 같은 증상 및 뒤 이은 자살에 이르렀다고 볼 만한 근거가 없으면 비록 개인적 취약성(망인의 성격 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쉽게 말해 업무 스트레스가 심했고, 다른 개인적 자살 요인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 자살은 산재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로복지공단은 이러한 대법원의 견해를 받아들여 자살 사건의 산재 승인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하는데도, 여전히 관습적으로 ‘불승인’을 반복하고 있다. 심지어 근로복지공단은 근로자가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자신들의 패소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도 자살 산재만은 법원의 조정 권고조차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패소하면 항소로 대응한다. 자살 산재와 관련한 유사한 대법원 판결이 다수 존재한다는 것도 그만큼 근로복지공단이 자살을 산재로 잘 인정하지 않고, 행정소송에서도 기어이 대법원까지 끌고 갔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재판이 무의미하게 길어지면서 남겨진 유족들의 고통은 커져만 간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근로자가 일을 하다 다치거나 병들면 신속히 보상하려는 목적에서 제정(산재보험법 제1조)됐다. 근로복지공단도 이 법에 따라 만들어졌으므로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게 보상하여…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근로복지공단은 ‘신속한 보상’은 뒷전이고, 명백한 사고성 재해가 아닌 한 오히려 재해가 ‘업무와 관련이 없다는 점’을 증명하는데 역량을 집중하는 듯하다.
법률에 의해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근로복지공단이, 마치 민간 보험회사 마냥 어떻게든 보험급여 지급을 줄이려 하는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이 근로자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이유다.
변호사·법무법인 여는, 금속노조법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