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풍이 부드럽고 아름다워 중국 당나라 말기 제일가는 시인으로 인정받는 두목의 시 ‘산행’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가던 수레 멈추게 한 건 아름다운 황혼 단풍/ 서리 맞은 단풍잎, 봄 꽃보다 붉어라’. 세상살이 갖은 풍상에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온 황혼의 인생은 청춘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서리를 맞고도 붉게 물든 단풍에 비유했다.
“가을 단풍은 떨어져도 예뻐요. 주워서 책갈피에 꽂아두죠.” 법륜 스님은 즉문즉설 유튜브에서 이 시 구절을 활용해 ‘잘 물든 단풍은 봄 꽃보다 아름답다’면서 “나이 먹는 걸 서운해하지 마라”고 설파했다. 봄 꽃은 예뻐도 금방 떨어지고, 그 꽃을 주워가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나이 먹은 건 단풍과 같고 젊음은 꽃과 같다’는 스님의 법문이 새삼 떠오르는 단풍의 계절이 왔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에 따르면 오는 12일부터 지리산에서 곱게 물든 단풍의 자태를 가장 빠르게 감상할 수 있다. 이어 소백산(15일), 설악산(17일), 주왕산(19일), 계룡산(20일), 속리산(21일), 한라산 1100도로(22일), 수리산(24일), 내장산(26일), 전남 완도 상황봉(30일) 등 이달 말까지 봄 꽃보다 아름다운 절정의 ‘가을 잎’ 향연이 전국에서 펼쳐진다.
이번에 나온 단풍예측지도는 산림의 기후변화 영향 예측을 위해 구성됐다는 점이 이채롭다. 산림청 주관으로 국·공립수목원 10개 기관이 함께 시뮬레이션 모델을 적용했다고 한다. 수목원 네트워크의 산림식물계절 관측 자료를 이용한 기계학습(머신러닝) 기반의 단풍예측이라고 하는데, 인공지능 기법을 식물계절 예측에 적용한 세계 첫 사례라고 한다.
계절의 변화와 함께 온 산야에서 자연스럽게 맞닥뜨리는 단풍을 감상하면 그만이지 절정 시기의 정밀한 예측이 무슨 대수냐 싶다. 하지만 “단풍 시기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숲의 심미적 생태계 서비스를 넘어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식생의 휴지기 변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는 전문가(서울대 환경대학원 정수종 교수) 견해를 들어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장기간에 걸쳐 관측 자료가 확보되면 기후 변화에 따른 생태계 변화를 예측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길어야 9일가량 가을 운치를 보여주는 단풍이 시대 흐름에 맞는 또 다른 역할을 하는 것 같아 반갑다.
100세 시대 제 삶의 절반을 넘기고 ‘제2의 인생’ 여정에 나선 세대가 희망의 계절을 맞았으면 좋겠다. 때론 잎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
강춘진 논설위원 choonj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