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과 학생의 차이는 뭘까? 학생의 사전적 의미는 ‘1. 학예를 배우는 사람. 2.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는 사람. 3. 생전에 벼슬을 하지 아니하고 죽은 사람의 명정, 신주, 지방 따위에 쓰는 존칭’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학교를 다니면서 배우는 사람을 뜻한다. 학령기에 있는 이들을 통칭하는데, 또한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기도 한다.
청소년은? ‘ 1. 청년과 소년을 아울러 이르는 말. 2. 청소년기본법에서 9세 이상 24세 이하인 사람을 이르는 말. 3. 청소년 보호법에서 19세 미만인 사람을 이르는 말. 다만, 만 19세가 되는 해의 1월 1일을 맞이한 사람은 제외한다’고 사전은 정의한다. 재미난 것은 법률적 용어인 점이다. 왜 법률적 용어가 필요했을까? 필자는 사회적 신분이나 역할에서 보호가 필요한 사회적 약자로 우리 사회는 이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으로 안다. ‘학생’ ‘청소년’ 낱말 속에는 우리가 깊이 생각지 않았던 사회적 신분, 계급이 존재하고 있다.
학생에게는 학교라는 울타리가 많은 것을 성역화하며 지켜준다. 하지만 같은 또래 집단인 ‘학교 밖 청소년’은 사회라는 울타리가 지켜줘야 함에도 우리 사회는 아직 그 역할을 제대로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신분·계급적 요소가 다양한 형태로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비해 많이 바뀌고 민주화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 인식에 한계는 남아있는 것 같다.
필자는 일의 특성상 다양한 청소년을 만나고 있다. 내가 아는 ‘학교 밖 청소년’이 있다. 나름의 이유로 학교를 나왔다. 자퇴생이란 이유 하나만으로도 여러 가지 꼬리표가 붙었다. 그 친구가 삶에 대한 준비를 위해 학업을 중단하지 않도록 대학생 멘토를 붙여 공부를 돕고, 취미나 특기를 개발하도록 제공하고 있다. 그는 주위의 눈이 불편하고 피곤하지만, 열심히 노력한다. 하지만 잘 되지는 않는다. 옆에서 독려하고 윽박지르면서 무언가 하도록 열심히 ‘꼬셔’ 본다. 집안이 넉넉하지는 않아 배달 알바를 한다. 그래서 피곤하고 바빠 학업은 늘 뒷전이었는데 용케 검정고시에 합격해 고졸 학력을 취득했다. 동년배보다는 1년 먼저 학력을 취득했다.
요즘은 센터에 빠지지도 않고 열심히 한다. 기특하다. 하루는 오후 2시쯤 비에 쫄딱 젖어 센터에 들렀다. 제일 먼저 한 말은 “샘, 배고파요”였다. 그날따라 배달이 밀려 밥도 못 먹고 알바를 했단다. 배달 콜은 계속 들어왔다. “비도 오고 위험한데 밥은 먹고 해라”며 콜을 못 받게 하고 식당으로 데려갔는데 “배달 가야 한다”고 한다. “밥은 먹고 하라”니까 강제 콜이 들어왔다고, 이거 안 하면 불이익을 받거나 잘릴 수 있다고, 배달 갔다 와서 먹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밥을 못 먹었다.
그날 이후 배달음식을 시킬 때 마음이 좀 불편하다. 우리 센터에는 이런 친구들이 많다. 몇 년 전 1년에 학교를 그만두는 청소년이 약 6만 명이라는 교육부 발표를 본 적이 있다. 학교 밖 청소년은 먼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이런 청소년을 배려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느낀다.
한 학교 밖 청소년은 동네 어르신께 “학생이 학교 갈 시간에 뭐하고 돌아다니냐”는 훈계를 들었다며 짜증을 낸 적이 있다. 자기를 위해 한 훈계인 건 알지만 남의 사정도 모르고 훈계를 하는 건 잘못된 것 아니냐고 항변한다. 그 친구는 “개교기념일이라 답했다”고 말했다. 남의 일에 관심을 가져주는 아직은 따뜻한 사회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사정을 알아보지도 않고 자기 판단으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배려는 섣부른 것 아닌가?
배달음식을 시켜 먹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내 판단으로 타인을 배려하지 말자는 얘기다. 지난 추석에도 직장, 취업, 학업, 공부, 결혼 등의 안부 인사가 싫어 친지를 만나지 않은 아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선의라고 해도 차별로 왜곡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학생보다 ‘청소년’이란 용어가 더 많이 쓰이기를 기대한다. 국제신문이 우리 이웃으로 사회에서 함께 사는 청년과 청소년들에게 더 많은 배려와 관심을 보내주기 바란다.
부산 동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