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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언택트 시대의 한가위 풍경 /정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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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9-24 19:23:46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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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굶었는지 폭식을 한 고속도로 온종일 끙끙거리며 복통을 호소했다/그래도 웃으며 가는 회귀하는 연어 떼” (변현상의 시조 ‘귀성’)

추석과 설이 되면 우리는 고향으로 회귀하는 연어가 된다. 오가는 길이 지치고 힘들어도 나를 반겨주는 곳으로의 회귀는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거기에는 나의 냄새가 있고, 살아계시든 돌아가셨든 항상 내 편인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민족의 대이동’ ‘귀성 전쟁’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고향으로의 회귀는 한꺼번에 이루어지지만 예견된 일이다. 못 가는 이는 있어도 투덜대는 이는 없다. 방법을 강구할 뿐이다. 한밤중에 출발하고, 역귀성이 생기고, 고속도로에 버스 전용차선이 운영된다. 방송에서는 실시간으로 교통 사정을 알려주고 정부는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해 주어 귀성을 돕는다.

“청마루 둘러앉아 반가운 정 반죽한다/풀벌레 저 울음도 송편 속 저며 넣어/어머니 넉넉한 마음 솔향기로 쪄낸다//담 너머 함박웃음 지붕 위 박이 여물고/우물가 두레박도 출렁출렁 달빛 긷는/둥두렷 서로의 가슴 떠오르는 달 좀 보소”(김임순의 시조 ‘추석’)

추석은 넉넉하고 풍요로움의 상징이다. 그래서 예부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했다. 벼가 익고 과일이 익고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도 덩달아 익는다. 재래시장이 붐비고 떡집은 손이 모자라 온 식구가 팔을 걷어붙인다. 밤늦게까지 택배기사들의 발걸음이 종종거린다. 전을 부치는 냄새가 문밖까지 고소하고 송편을 빚는 손들이 넉넉하다. 차례에도 성묘에도 감사가 함께하고 그렇게 강렬하던 햇살도 추석에는 온화해진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단어가 며느리들의 처지를 대변하고 ‘시댁에 먼저 갈 것인가? 처댁에 먼저 갈 것인가?’로 부부싸움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추석 이혼’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도 한다. ‘결혼 언제 하니?’ ‘취업은 했니?’라는 친척들의 질문으로 받는 스트레스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런 부작용쯤은 다 품어줄 것 같은 보름달이 뜨면 소원들이 일제히 보름달을 향한다. 달마저 풍성한 추석이다.

“추석을 기다리는 운촌시장 부산하다/더딘 시간 밀고 가는 할머니들 재바른 손/난전에 빙 둘러앉아 콩나물을 다듬는다//어느 집 차례상에 고이 올릴 보름달/살아온 얘기들이 노랗게 총총 박혀/발들은 잘려 나가도 하늘 높이 뜨겠다”(졸시조 ‘열사흘 달’)

그런데 올해 추석이 수상하다. 거리도 재래시장도 조용하다. 명절 연휴기간 동안 북적이던 공항이 지금은 숨죽은 듯 고요하다. 기대와 설렘마저 차분하다. 재래시장 난전에서 콩나물을 다듬어 파는 할머니 곁에는 이맘때면 동네 할머니들이 여럿 모여 일을 거드는데 할머니들의 재바른 손이 멈춰 있다. 벼들은 들판에 누운 채 하늘만 응시한다. 감보다 더 붉게 물드는 감 이파리들은 채 물들기도 전에 다 떨어져 감들이 여위고 있다. 태풍으로 사과와 배는 온전한 모습이 드물다.

며칠 전 고속도로를 달려 아버지 산소에 혼자 다녀왔다. 불편한 구두를 신은 고모에게 운동화를 내어 주고 내 생애 단 한 번 아버지 등에 업혀 올랐던 그 비탈길이 그날의 아버지 등같이 따뜻했다. 늘 많은 식구가 함께 산소를 찾았을 때는 아버지를 뵈러 가는 소풍이었는데 혼자 가는 길은 쓸쓸하고 무거웠다. 그래도 여느 때처럼 코스모스는 피고 하늘은 높았다. 자연은 그대로인데, 가을은 오고 있는데….

귀성은 돌아가서 살핀다는 의미가 있고 성묘는 묘를 살핀다는 의미이다. 이번에는 추모도 성묘도 온라인 속에서 눈으로 살피는 사람이 많다. 추석이 되면 외롭고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마음 또한 넉넉했는데 이번 추석에는 그들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어질까 걱정이다. 사회와 정부가 소외된 약자들에게 더 다가가리라 믿는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의 추석 풍속도까지 바꾸어 버렸다. 언택트(untact) 시대를 코로나19가 앞당기고 있다. 매번 추석이 돌아오면 북녘 땅에 고향을 둔 실향민의 아픔이 크게 다가온다. 이번 추석은 코로나19에게 고향을 뺏긴 기분이다.

그래도 견뎌야 한다. 내년 추석을 위해, 아니 다가올 좋은 날들을 위해 견뎌야 한다. 자제하고 스스로 제한하여 이번 추석을 견뎌낸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을 곧 돌려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귀성길이 밀려도 좋겠고, 시집가라는 잔소리를 들어도 좋겠고, 음식을 장만하느라 힘들어도 좋겠다. 얼굴 마주 보고 웃고, 얼싸안을 수 있는 명절이 오길 이번 추석 보름달에게 조용하고 간곡하게 빌어 본다.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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