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시지탄(晩時之歎). 가야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신청 대상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떠올린 말이다. 세계유산에 도전하는 가야고분군은 김해 대성동, 함안 말이산, 합천 옥전, 고령 지산동, 고성 송학동,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창녕 교동과 송현동 등 모두 7곳. 한반도에서 고대국가 성립 이전의 연맹 단계를 살펴볼 수 있는 연속 유산이다. 각 고분군이 1~6세기를 빛낸 가야연맹의 정치 경제 문화를 상징한다는 이야기다.

문화재청은 지난 10일 오후 열린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 회의에서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국내 최종 관문을 통과한 셈이다.

문화재청이 내년 1월까지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가야고분군 등재신청서를 제출하면, 심사를 거쳐 2022년 제46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유산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세계유산은 미래 세대에 전달할만한 인류 보편적 가치가 있는 자연이나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유산이다. 가야는 한국 고대사와 동북아 국제 교류사에서 중요한 축을 이뤘으나 문헌 사료 부족으로 그 실체가 베일에 싸여 있다. 고분군이 가야사의 비밀을 푸는 열쇠 역할을 하는 이유다. 세계로부터 가야고분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는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마냥 좋아할 수만 없는 이유가 있다. 부산 복천동 고분군이 빠졌기 때문이다. 복천동 고분군은 6세기 이전 부산 유일의 지배층 무덤으로 가야 문화의 번성과 신라로의 편입 과정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철제 갑주(甲胄·갑옷과 투구)와 마구류를 비롯해 철덩어리는 가야를 ‘철의 왕국’으로 부르는 까닭을 증명하며, 금동관과 청동제 칠두령 및 다양한 토기류가 4~5세기 가야사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가야사의 출발’이라고 일컫는 유적이다.

따지고 보면 복천동 고분군은 이미 2018년 후보군에서 제외되었으니 버스 지난 뒤 손 흔드는 격일 수 있다. 기왕불구(旣往不咎), 이미 지나간 일이라 탓하고 싶지 않지만 과거 잘못을 깨닫고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하기에 이번 기회에 그 과정을 되짚는다.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추진은 2017년 본격화했다. 김해 대성동, 함안 말이산, 고령 지산동 등 3개 고분군이 대상이었다. 문화재청의 추가 권고에 33개 고분군을 재검토했고, 복천동은 4~5세기를 대표하는 유력한 후보였으나 거기까지였다. 고분군 주변에서 이뤄질 대규모 주택재개발 사업 때문이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고분군이라면 세계유산 선정 기준을 충족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환경임은 불문가지(不問可知).

해당 주민들의 불편이나 기대를 외면할 수 없다. 문화재청이나 부산시에서 밟아온 행정적 절차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공사를 시작하기 앞서 마무리해야 할 관련 절차와 매장 문화재 발굴 조사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복병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 2018년 부산시의 재개발 사업 조건부 허가에 반발하며 역사·고고학계가 내놓은 성명이 이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 요지는 이렇다. “변한·가야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각종 유적이 밀집 분포한다면 사업 대상지의 많은 곳이 현지 보존되고 문화재보호구역으로 확대 지정될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 몫이다. 부산시가 이런 정보를 주민에게 상세히 전달하고 숙지시켰는지 의문이다.”

복천동 고분군은 1969년 9월 처음 학계에 알려졌다. 당시 올해처럼 추석을 코앞에 둔 시기였다. 무허가 판자집을 허물고 택지를 개발하다 고분군의 존재가 처음 확인됐다. 금동관과 철덩어리가 출토된 복천동 1호분이다. 1980년 9월엔 420가구 규모 연립주택 공사를 앞두고 도굴 흔적이 전혀 없는 두 개의 고분 발굴이 이뤄졌다. 순장(殉葬) 흔적을 확인했으며, 철제 갑주와 마구류가 쏟아졌다. 임나일본부설을 극복하고, 사적 273호로 지정되는 계기가 됐다. 함부로 봉인을 해제할 수 없는 땅이지만, 이젠 되돌아 올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

두고 두고 아쉬움을 삼켜야 할 상황이 명확해진다. 가야고분군이 세계유산이 된다면 복천동 고분군으로 대표되는 4~5세기 가야사가 공백으로 남는다. 세계인이 함께 누려야 할 가야사이기에 그 공백이 더 커보일 터. 부산과 경남 울산의 상생 협력을 논의하는 요즘이다. 뿌리를 알아야 미래를 설계할 힘을 갖는다. 그 뿌리가 될 역사를 아파트 숲 사이에 가둬버리는 일이 현재진행형이다. 그 옹색한 모습을 보고 미래세대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느냐고 묻는다면 부산시는 무엇이라고 해명할 건가.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잘못이 있으면 고치는 것을 꺼리지 말라했다. 옛말 하나도 틀린 것 없다.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