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孔子)의 수제자 자공(子貢)이 천하를 유람하다가 어느 시골 마을에서 밭을 일구는 노인을 만났다. 그 노인은 힘들게 우물에서 물을 길어 밭에 내고 있었다. 자공은 안타까운 마음에 용두레라는 효과가 큰 기계를 소개하자 노인은 버럭 화를 내며 천하의 자공에게 일장 훈계를 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기계라는 것은 반드시 기계로서의 기능이 있게 마련이고, 기계의 기능이 있는 한 반드시 효율을 생각하게 되고, 효율을 생각하는 마음이 자리 잡으면 본성을 보전할 수 없게 된다. 본성을 보전하지 못하게 되면 생명이 자리를 잃고, 생명이 자리를 잃으면 도가 깃들지 못하는 법이네. 내가 그 기계를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부끄러이 여겨서 사용하지 않을 뿐이다.”
이후의 대화에서도 자공이 공자의 제자임을 알게 되자 더욱 신랄하게 꾸짖는다. ‘장자(莊子)’ 천지(天地)편에 나오는 일화다. 장자는 노자와 더불어 자연에 대한 인위적 개입을 부정하며 무위(無爲) 사상을 설파했고, 인간의 역할을 강조했던 유가(儒家) 사상과 대립한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 ‘장자’에는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즉 인류가 이룩한 문명을 거부하고 원시로 돌아가자고 주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일화는 우리로 하여금 포화상태에 이른 현대 기술문명에 관해 성찰하게 한다. 특히 장자의 훈계 중에서 마지막 문장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노인은 용두레라는 편리한 기계를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부끄러이 여겼다는 것이다.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한 장자는 왜 이 노인을 통해 마치 기계를 사용하는 것이 도에 어긋나는 것처럼 주장했을까?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꼭 필요한 기술과 인간을 소외시키고 인간성뿐 아니라 우리 삶의 터전을 황폐화시키는 부끄러운 기술을 분별하자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이미 세계인구가 80억에 접근하는 지금, 기술 자체를 부정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럼 어떤 기술이 꼭 필요한 것이고, 또 어떤 기술이 부끄러워 지양해야 할 것인가? 현대 사회와 문화, 그리고 지구 생태계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통해 정확히 분별할 수 있다. 사실 대부분의 질병에 대해서는 그 치료법이 잘 알려져 있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진단이다. 잘못된 진단은 잘못된 치료를 낳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계문명으로 넘쳐나는 이 시대의 학자들은 현재의 우리를 정확히 진단함으로써 부끄러운 기술들이 사라지도록 선도해야 할 때다.
지금 명약관화하게 지양해야 할 것은 되돌리기 힘든 기후 변화를 가속화시키는데 기여하는 기술이나 사용 원료가 지구적 물질 순환에서 빗겨나 폐기물로 남게 하는 기술이다. 1~4차에 걸친 모든 산업의 동력은 여전히 석유이며 이는 6차 대멸종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적어도 10만 년 동안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폐기물을 생산하는 핵발전 역시 우리 터전을 순식간에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가 온실 가스 배출에서 세계 7위라는 사실, 비좁은 땅에 5000만 명 이상이 밀집되어 살아가는 이 나라가 원전 밀집도 세계 1위라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정말로 부끄러워해야 한다. 미래 예상 배출량을 기준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겠다는 꼼수로 파리 기후협약에 마지못해 참여했고 원전 확대 정책으로 일관했던 전 정권에 비해 문재인 정부는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고는 있지만 너무나 느긋하고 안일하다. 재생에너지 비율에 있어서는 여전히 OECD 국가 중 꼴찌이며, 탈핵을 선언하기 했지만 완전한 탈핵까지는 까마득하다. 얼마전 정부가 야심차게 발표한 ‘그린 뉴딜’에 그린도 없고 새로움도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문명 비평가로 ‘기술과 문명’ 등을 통해 거대 도시와 기술을 비판한 루이스 멈포드도 인류문명을 가져다 준 기술을 찬양하지만 인간성이 기술에 종속되어버린 현대 기술을 극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인간성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존마저도 종속된 지금이야말로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지순협대안학교 교수·‘시민의 물리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