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편의점에 들러, 박카스류의 음료를 종종 사 마시는 나 자신을 보면서, 나도 아저씨가 되긴 했나 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십 대 때는 그런 아저씨들이 마실 것 같은 음료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덧 몸이 힘든 게 느껴지고, 그래도 하루가 많이 남아 있기에 나도 모르게 그런 피로회복제를 찾고 있는 것이다. 홍삼이랑 비타민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일부러라도 오르막을 오르거나 걸으려 하는 나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내 몸이 세월과 함께 흐르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요즘 더 그런 걸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몸 여기저기 난 생채기가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예전에는 몸에 상처가 나더라도, 며칠 지나면 말끔히 사라지곤 했는데 이제는 몇 주가 지나서야 겨우 없어진다. 종종 거울을 보면 피부에 탄력도 많이 사라진 걸 느낀다. 어른들이 마음은 아직 청춘인데 나이만 들어버렸다고 하던 이야기가 이해된다. 이십 대의 나를 떠올려보면, 낯설지가 않은 것이, 지금부터 그리 먼 옛날이라 생각되지 않는데, 몸도, 상황도, 현실도 여러모로 달라져 있다.
이십 대에 바라보던 나이 서른 중반쯤이라는 것은, 거의 모든 걸 갖추고서 사회 중심 어딘가에서 완전히 독립된 주체로서, 양복 입고, 차와 집을 갖고, 가질 만한 것은 다 갖춘 채 살아가는 완성된 존재 비슷하게 보였던 것 같다.
그런데 나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도 그렇지만, 완성되었다고 할 만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다들 진행 중인, 십 대 때나, 이십 대 때나, 한창 달리고 있다는 점에서 별반 다르지 않은 나날을 살아내고 있는 것 같다. 때론 사십 대나 오십 대도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은퇴하고 나이 칠십쯤 되면 삶의 ‘진행과정’이랄 것은 끝나고 완성되어, 이제 이룰 것은 다 이루고,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얻을 것은 얻은 상태로 살아갈지 모르겠으나, 내가 주변에서 본 칠십 대나 팔십 대도 어딘가로, 심지어 매일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삶이라는 게 무언가를 쌓아가며 사는 것 같지만, 때로는 그 순간으로 모든 게 지나가 버리는구나, 하고 느낄 때가 많다. 아이가 태어나길 기다리며 젖병소독기며, 아기욕조며, 아기침대며, 카시트며 하는 것들을 아내와 고민하며 부지런히 골랐는데, 어느덧 그중 남은 것도 별로 없다. 그 시절, 아이를 얼마간 키워내고는 그렇게 고민하고, 공들이고, 정성 들였던 날들과 함께, 그토록 기다리던 마음, 준비하던 마음 같은 것들도 떠나가 버렸다. 좋은 여행이 되길 바라며 열심히 알아보며 기다렸던 날들도, 여행과 함께, 몇 장 사진을 남기고서는 그렇게 사라졌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는 의연해지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어떤 탐욕, 어떤 권력욕, 어떤 성욕, 이를테면, 피골이 상접해갈 때도 노욕 같은 것만이 남는 게 문득 이해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삶이라는 게 이토록 부지런히 빠져나가고, 지나가고, 흘러가고, 아무리 가도 도달할 수 없는 것이라면, 결국 어느 시점에는 정말 그런 마지막 욕망만 남는 때도 오겠구나 싶긴 하다. 젊은 날, 그토록 풍요로웠던 꿈, 이상, 열정 하나로 세상 끝까지 달려 나갈 수 있었던 모험심, 가진 게 없어도 자유로웠던 마음 같은 것은 나이가 들며 고갈되어 갈 것이다. 그렇게 부지런히 삶을 살아내고, 다 고갈시켜버리고 나면, 이제 삶에서 남는 건 어떤 집착과 탐욕, 한 줌의 권력욕이나 타인을 지배하고 원망하거나 깔보고 싶은 마음만 남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나도 아저씨가 되어가는데, 몸도 정신도 예전과 같을 수는 없을 테지만, 한 줌 마음을 지켜내고, 조금이라도 건강한 몸으로 이 다음을 꿈꾸고, 또 조금은 어딘가에 안도하듯 머물러 도착한 듯한 기분도 느끼고 싶다.
삶이란 게, 기차처럼 달려간다. 언젠가 어디쯤에는 기차에서 내리고 싶을 것 같은데, 그곳이 올지, 그런 간이역이 있을지 가끔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잔잔한 새소리가 들리는 그런 간이역의 플랫폼을 생각하며 달려가는 일이 썩 나쁘지만은 않다. 내가 조금은 의연하고 욕망에서 거리를 두며 내 안에서 나를 완성해갈 수 있는 그런 아저씨가 되어가길 바란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