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인생을 여행이라고 한다. 이 명제를 감동적으로 표현한 문학작품의 하나가 노르웨이 작가 입센이 쓴 극시 ‘페르귄트’다. 주인공 페르는 애인 솔베이지를 버리고 돈과 권력을 찾아 세계여행을 떠난다. 미국과 아프리카에서 노예상을 하며 큰 돈을 버는가 하면, 여자에게 배신당해 정신병자로 몰리기도 한다.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깨닫고 귀국길에 오르지만 배가 난파해 무일푼이 된다. 페르는 솔베이지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둘 때에야 비로소 안식을 얻는다. 그를 구원한 건 고향과 솔베이지였다. 그 사랑의 힘은 노르웨이 작곡가 그리그의 ‘솔베이지 노래’에서 절절히 느낄 수 있다.
여행의 내용을 구성하는 것은 세상 경험이지만, 여행을 완성하는 건 귀향이다. 여행기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이븐 바투타의 ‘이븐 바투타 여행기’도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각각 23년, 25년에 걸친 파란만장한 여행을 정리하지 않았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 경험에 대한 정신적 성찰의 결과물인 철학 역시 귀향의 소산이다. 유가 철학의 바이블 ‘논어’는 기원전 497년 노나라를 떠나 13년간 천하를 주유했던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귀국해 편찬한 어록이 아닌가. ‘맹자’ 역시 기원전 320~305년 맹자와 그의 제자들이 했던 천하여행의 철학적 결산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아오른다”는 헤겔 ‘법철학’의 명제 또한 같은 맥락이다. 저녁에 귀가해 아침과 낮에 있었던 대외활동을 성찰해야 ‘미네르바의 부엉이’(지혜)가 날개를 펼 수 있다. “세계사란 정신이 스스로를 자유라고 의식하는 자유의식의 발전과정과 이 의식에 의해서 산출되는 자유의 실현과정을 타나낸 것이다.” 헤겔은 역사철학을 정신의 여행으로 파악했다. 한 주장(正·정)과 그에 모순되는 다른 주장(反·반)이 대립하다 더 높은 종합적인 주장(合·합)으로 승화하는 변증법적 여행이다.
저비용항공사 에어부산이 김해공항을 출발해 남해안 상공과 제주 인근까지 비행한 뒤 다시 김해로 돌아오는 여행상품을 개발했다. 이른바 ‘원점회귀비행’이다. 산행은 원점회귀를 많이 하지만 비행은 처음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여행난이 낳은 이색상품이다. 한데 관광이든, 인생이든 여행은 귀향을 통해 완성된다는 진리를 생각하면 단순히 이색상품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코로나19가 만든 특별한 여행인 듯하다. 코로나를 극복하려면 부단한 원점회귀(성찰)가 필요하다. 그렇게 우리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 “나는 여행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