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운영하는 어린이 전문 서점 ‘책과 아이들’(부산 연제구)에 오는 아이들 대다수는 “서점이 처음”이라고 말한다. 내가 자라던 1970, 80년대는 우리 동네만도 서점이 여럿 있었다. 신자유주의 시대 이전, 구멍가게가 가능했던 때, 서점도 그랬던 거 같다. 당시 출판사와 서점은 1950, 60년대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자율 협약으로 책을 정가 판매하기로 해 지역별 서점 운영이 가능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출판은 진흥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도서 다양성에서 5위에 들기도 했다고 한다.
IMF 외환 사태 이후 온라인서점과 쇼핑몰의 ‘무한 할인’을 못 이기고 문을 닫는 서점이 늘었다. 위기를 느낀 업계와 정부 부처는 출판진흥법안에 ‘도서정가제의 법제화’를 검토한다. 그러나 당시 신산업이던 온라인의 성장 발전 논리에 밀려 온라인 서점에서만 ‘10% 할인+9% 내 경품’이 가능한 기형적인 도서정가제가 2003년 시작된다. 그 뒤 문 닫는 서점은 더 늘었고 수정 법안들도 구간 할인을 더 부추기는 등 출판·유통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 기억으로 어린이 전문 서점이 2000년대 초 전국 270여 개였던 것이 2010년대 초 10여 개로 줄어든 것도 이의 여파다.
온라인 서점끼리도 과열 경쟁으로 한계에 달하자, 2014년 11월 ‘10% 할인+5% 적립’ ‘재정가제 도입’으로 지금의 도서정가제가 됐다. 현재는 여기에 무료 배송, 굿즈(goods), 중고책 아닌 중고책 판매까지 더해져 이 불완전한 도서정가제나마 지켜지지 않지만, 2014년 현재의 도서정가제 시행 후 출판생태계가 조금은 살아났다고 본다. 전국 책방 감소세가 둔화되고 독립서점은 늘었으며 출판사 수와 신간 도서가 늘었다.
OECD에 속한 36개 나라의 대다수가 완전도서정가제를 통해 오프라인 서점을 보호하려는 이유는 뭘까? 문화 다양성 확보와 자국 문화의 정체성 확립에 책이 빠질 수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동네책방은 그 최종 파수꾼 역할을 하는 것이고…. 만약 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 몇 개만 있다면, 독자의 선택권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프랑스는 전 문화부 장관 자크 랑의 이름을 딴 ‘랑법’으로 동네서점을 안전하게 유지한다. 서점 주에게 무이자 10억 원을 10년 거치 10년 상환으로 빌려주고, 온라인에서는 정가 판매를, 오프라인에서는 5% 할인과 무료 배송을 하도록 하는 정책을 편다. 우리나라와는 정반대다. 또 비영어권인 유럽 국가와 일본은 자국어로 된 도서의 출판을 보호하고자 ‘반아마존법’을 만들었다.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와 청와대도 도서정가제법의 목적이 무엇인지 또렷이 인지해 원칙을 세워야 한다. 오는 11월이 되면 ‘개정된 도서정가제’를 시행해야 한다. 현재의 도서정가제가 후퇴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13개 관련 단체가 16번에 걸친 회의로 도출한 합의안은 ‘현 도서정가제 유지 또는 강화’ 방향이었다는데, 현 도서정가제 폐지를 긍정한 국민 청원에 약 20만 명이 참여하면서, 이 합의안은 무효화될 듯하다고 한다. 웹툰과 웹소설 등 전자책 분야에서 낸 목소리가 브레이크를 걸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가 투명성이 없다. 개방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이다.
동네책방은 책 문화를 살리고자 문체부에서 시행하는 사업에 적극 참여한다. 덕분에 동네책방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책을 사는 참여자도 늘었고, 개성을 지닌 책방이 부쩍 많아졌다. 문학 디자인 음악 여행 과학 독립출판 미술 페미니즘…. 부산만 해도 전문성 돋보이는 서점이 얼마나 많은가? 설마 여기에 찬물을 끼얹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당장의 이익에 가려져서는 안 될 책의 문화적 특성을 보장하고자 한다. 도서정가제는 전국적으로 어느 곳에서나 같은 가격으로 도서를 판매해 국민의 독서 평등권을 확보할 것이며, 유통체계의 집중화를 방지하고, 특히 어려운 작품을 창작·출판할 수 있는 출판다양성을 보장할 것이다.” 랑법의 기초가 된 프랑스 정부의 이 선언은 우리 독자의 권익을 위해서도 유용하다. 도서정가제는 책·서점·출판의 다양성뿐 아니라 독자의 권익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책과아이들·마을문화원 평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