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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칼파브리크샤 나무의 한숨 /차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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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8-20 19:39:05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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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들어주는 신비한 나무가 있다. ‘칼파브리크샤’.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이 나무는 누구나 키우고 싶겠지만, 소원을 이루기란 쉽지 않다. 칼파브리크샤는 ‘마음’이라는 씨앗이 ‘욕심을 버린’ 물을 만나야만 신비한 힘을 가진 싹을 틔우기 때문이다.



“우선 급히 사용할 물건부터 살펴보고 있어요. 쓸 만한 것들 위주로 골라내고 있는데…. 그런데 아무것도 남아있는 것이 없네요.”

수재민들의 인터뷰가 자꾸만 내 마음에 동동 떠다녔다. 한 순간에 물에 잠기고 모두 사라져 버렸다. 정성을 다하고 희망을 품던 터전을 잃어버린 것이다.

폭우가 이어지던 날, 뉴스를 보다가 피해지역 근처에 살고 있는 친구가 생각났다. 문자를 남기려다 말고 급한 마음에 전화를 했다. “너희 집은 괜찮니?” “응, 다행히 여기는 별일 없어.” 무사하다는 대답을 듣자 마음이 놓였다. 오랜만에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친구가 내게 꽃들의 안부를 물었다. “네 꽃들은 괜찮아?”

한 달 이상 계속된 장마로 정원 울타리 밖에 만들어 둔 배수로가 막히고 그 옆으로 난 길은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심하게 패고 갈라졌다. 돋우어 올린 땅이 약해져서 그 위로 세워 둔 울타리가 휘청 쓰러질까봐 조마조마했다. 해마다 걱정스런 마음에 모래주머니와 돌을 쌓아올리고 정원 구석구석 물길을 내어 두었지만 올해처럼 잦은 비로 길 옆의 산이 무너져 내린다면 이런 노력들은 한 순간에 허사가 될 것이다.

폭우가 쏟아진 다음 날, 정원에 도착한 나는 산에서 쓸려 내려온 돌들을 치우며 고인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다. 비가 그치고 햇살이 비취자 폭우와 태풍의 바람을 다 겪은 아기 해바라기가 꽃을 피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줄기는 구부정하게 휘어지고 꽃잎 절반이 찢겨나간 채 해를 바라보며 힘겹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해바라기 곁에 앉아 신화 속에 등장하는 칼파브리크샤 나무가 자라나는 상상을 했다. ‘욕심을 버린 물’이 필요하다는 구절을 주문처럼 되뇌며 무릎을 굽혔다. 이제 내가 할 일을 시작할 차례다.

흙바닥에 고개를 숙이고 뿌리 가까이 다가갔다. 식물들의 심장이 두근대는 것이 느껴졌다. 꺾인 가지는 따로 모아서 물통에 담고 여러 갈래로 흩어져 누워있는 안젤로니아 줄기를 두 손으로 쓸어 올렸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다듬자 말쑥해진 아이처럼 모양이 잡혔다. 흙탕물 때문에 시커멓게 변해버린 허브줄기도 털어주었다. 허브의 탁월한 향기가 마법처럼 쏟아졌다. 혼자서는 움직이기 어려운 식물들은 있는 그대로 상황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누군가의 손길이 닿으면 그것에 화답하는 일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쓰러진 식물들의 뿌리를 덮은 흙을 다독였다. 손으로 톡톡 흙바닥을 두드리자 무수히 많은 미생물이 살고 있는 생명의 근원이 답하는 냄새가 났다. 흙냄새. 비를 머금은 흙이 식물들의 뿌리에 영양을 공급하는 풍요로운 살 냄새였다. 사납게 쏟아지던 비도 돌아갈 곳을 찾은 것 뿐 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순간 지구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지구, 너는 요즘 어떠냐고 묻고 싶었다.

안부란 어떤 사람이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그렇지 아니한지에 대한 소식을 전하거나 묻는 일이다. 이웃과 꽃의 안부를 묻는 우리들은 이제 더 자주 지구의 안부도 물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의 소원을 들어 줄 나무도 지구가 없으면 자랄 수 없을 테니까. 지구를 돌보지 않은 채 눈앞에 보이는 이득과 내 울타리의 안전만을 지키는 일로는 나무의 싹을 구경하기도 힘들 듯 하니까.



우리가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이곳, 지구라는 별에 거대한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있다. 나무가 드리우는 그늘에서 쉬는 일과 그 가지에서 열리는 열매를 먹는 일이 달라지고 있다. 지구의 거칠어지는 숨소리를 들어보라고 말하고 있다. 거대한 칼파브리크샤 나무가 내쉬는 한숨이다. 비가 그치자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지구가 우리에게 보내는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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