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산의 서양 고전음악 공연 일정을 보면 ‘정말 많다’는 생각이 든다. 베토벤 공연 이야기다. 아무리 탄생 250주년이라 해도 부산시립교향악단부터 시작해서 민간 관현악단은 물론 솔리스트들까지 베토벤 일색. 악단들은 인기곡인 3·5·7번 교향곡부터 좀처럼 연주되지 않던 교향곡 1번까지 무대에 올렸다. 최고 인기곡인 5번 교향곡은 3개 악단이 연주할 정도다. 연주자들 사이에서 ‘보이지않는 힘이 나를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몰아가고 있다’는 푸념까지 나온다.
사실 올해는 슈만 탄생 210주년, 말러 탄생 150주년인데도 유독 베토벤에만 집중돼 있다. 물론 베토벤 음악은 좋다. 감정을 서서히 끌어올려 격하게 터뜨리는 흐름은 부산사람 취향 맞춤형이다. 그렇지만 베를리오즈의 자유분방함, 차이콥스키의 아름다운 멜로디, 라흐마니노프의 광야를 내달리는 듯한 서정, 스트라빈스키가 선사하는 혼란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선택은 극히 제한된다.
왜 지역 음악계는 유독 베토벤에 집착하는 것일까. 기획자들은 ‘누구나 좋아한다’ ‘베토벤 만큼 어느 정도 흥행이 보장되는 경우를 찾기 힘들다’ ‘연주자나 지휘자가 베토벤은 익숙해 공연 준비가 비교적 쉽다’는 등의 이유를 댄다.
사실 관현악단이 베토벤 같은 흥행 보증수표를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간다. 공연에 100명에 가까운 연주자가 참여하는 이른바 ‘블록버스터급’인 까닭이다. 이 때문에 세금 지원이나 기업의 후원 없이는 운영이 불가능하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흥행에만 집착하는 예술을 순수예술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를 재정 지원까지 해가며 유지하는 게 과연 의미 있는 일일까?
거장 사이먼 래틀이 이끌었던 CBSO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교향악단으로 인정받는 데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좋은 지휘자가 차별화된 레퍼토리로 무장한 덕이었다. 공연장은 그 다음에 새로 지었다. 부산에는 3, 4년 후면 서양 고전음악 전문 공연장이 2곳이나 생긴다. 모두 국내 최고 수준의 시설과 음향을 선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하드웨어가 먼저 갖춰지는 셈이다. 지역 서양고전음악계에 남겨진 숙제는 레퍼토리 개발이다. 지금처럼 베토벤만 하고 또 해서는 전문 공연장이 생겨도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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