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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칼럼] 이주의 시대와 문학

  • 문태준 시인
  •  |   입력 : 2020-07-30 19:38:02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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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엄마는 나쁜 엄마입니다.// 뭐든지 맛있다고 하면서 찬밥이나 쉰밥만 드시는/ 옷이 많다고 하면서 남편의 낡은 옷까지 꿰매 입는/ 아픈 데가 하나도 없다고 하면서 밤새 끙끙 앓는 엄마.// 한평생 자신의 감정은 돌보지 않고/ 왠지 죄의식을 느끼며/ 낮은 신분으로 살아가는 엄마.”
   
그림 서상균
고현혜 시인의 시 ‘나쁜 엄마’의 일부이다. 어머니의 큰 사랑과 희생을 다룬 이 시는 우리말의 구어(口語), 즉 일상적으로 대화에서 사용하는 말의 어감을 잘 살려내고 있다.

고현혜 시인은 미국 LA에 거주한다. 영어와 우리말로 시를 쓰는 재미 1.5세대 시인이다. 미국 내에서도 좀체 게재가 쉽지 않은, 오랜 전통의 시 잡지에 시를 발표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시집을 출간했고, 시 낭독회도 가졌다. 나도 몇 해 전 문학 행사에서 만나 시에 대한 얘기를 함께 나눈 적이 있다. 시에 대한 열의가 대단히 높았고, 한국시가 세계문학의 중심에 더 높은 위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를 들을 수 있었다.

고현혜 시인의 예를 들었지만, 모국을 떠나 국경 너머 낯선 이국에 살면서 한글에 대한 언어 감각을 잘 보존하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특히 문학에서 창작을 위해 활용하는 언어는 훨씬 예민한 것들이어서 작가들이 평소 한글에 대한 활용의 감각을 무디게 하지 않는 일은 더더욱 지난한 일에 해당한다. 이국을 향해 국경을 넘는 순간 모국어에 대한 느낌도 서서히 흐릿해지기 때문이다. 마치 손에 움켜쥐고 있던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흘러내리듯이.

그런데 최근 재외동포들이 쓴 많은 시를 읽을 기회가 있었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 중국 일본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스웨덴 태국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에 거주하면서 틈틈이 모국어로 창작한 작품들이었다. 이국에서의 거주 기간이 짧게는 수년부터 길게는 50년 10개월에 이르는 우리 동포의 창작시였다. 나는 시편들을 읽고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작품 수준이 높았고, 이처럼 오랜 세월 이국에서 살면서도 우리말에 대한 미감을 잃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자유시보다 엄격한 시조를 창작하고 있는 분도 있었다. 다음과 같은 시구가 있었다.

“문고리를 흔드는 해묵은 기침 소리/ 가등 홀로 지키며 서러움 토하시던/ 문풍지 섧게 우는 밤 아버지 등을 본다// (……) //무너지는 마음을 오래도 버티시며/ 대쪽의 꼿꼿함을 안고 사신 아버지/ 황소의 슬픈 눈동자 별이 되어 빛난다”

아버지와 고향집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쓴 시조였다. 예스러운 어휘를 잊지 않고 적재적소에 사용할 뿐만 아니라 은유적인 수사법도 빼어난 시조였다.

재외동포가 창작한 시는 대개 떠나온 모국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들이었다. 골목길과 언덕, 개울과 강, 동산과 산모퉁이, 학교와 친구 등 고향의 공간이 등장하거나 가족사에 관한 추억이 주류를 이뤘다.

이런 작품 외에도 현재 살고 있는 공간에서 느낀 시상을 자유롭게 쓴 작품도 있었는데, 나는 이런 작품들에 보다 고무되었다. 현재 사는 곳에서 착상된 시상을 한글뿐 아니라 그곳 언어로 바꿔서도 창작한다면 그곳 문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렇게 한다면 번역가의 도움을 별도로 받지 않기에 번역 과정에서 생기는 왜곡 가능성을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 26년 7개월째 살고 있다는 분이 쓴 시 ‘뿐짝에서’는 현재 우리 시단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작품이었다.

“외숙모는 내게/ 쑥부쟁이 달인 물을/ 하루 세 번이나 마시게 했다// 가을 길을 가다 만나는/ 목이 가늘고 긴 외숙모와 닮았던/ 보라색 꽃 더미// (……) // 오늘은/ 고국의 가을을 생각나게 하는/ 자카르타 근교 뿐짝에 와서// 어려서 어깨 통증이 자주 왔던 나와/ 몸매가 가늘었던 시골집 외숙모를/ 오래 생각하였다”

가을날에 길을 가다 우연히 보게 된 쑥부쟁이를 통해 고국의 가을과 시골집 외숙모를 생각하면서 쓴 시였다. 어깨가 아팠던 필자를 위해 쑥부쟁이 달인 물을 주던 외숙모의 보살핌을 얘기하되 외숙모의 가늘고 긴 목과 가냘픈 몸매를 쑥부쟁이의 외형에 빗대는 솜씨가 뛰어났다.

이처럼 이국에 살면서 쓴, 풍성한 시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 문학의 축복이다. 재외동포의 문학은 우리 문학의 또 다른 양상이면서 우리 문학의 외연을 넓히는 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재외동포의 문학이 세계어로 직접 창작된다면 나름의 경쟁력도 충분히 갖출 수 있을 것이다.

한국문학의 범주는 점점 확장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다문화사회에 들어섰다. 2030년이면 이주민 인구가 500만 명에 육박할 것이라고 한다. 타국으로 이주한 분들의 창작물뿐 아니라 우리나라로 이주해 온 분들의 창작물 또한 한국문학의 넓이와 폭을 넓히고 깊게 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탈경계의 글로벌 시대에 산다. 이에 따라 우리의 사유 또한 더욱 유연해져야 한다. 이산(離散)을 뜻하는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이제 이주의 체험은 날것의 상상력으로서 그곳 문학의 영토에 자연스럽게 편입될 것이다.

한 문학평론가는 “디아스포라의 경계인들이 전리품처럼 얻은 진정 단단한, 삶의 보편적 가치들이란 지금-이곳의 삶과 문학에서 길어 올려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 디아스포라들에게 ‘이산’은 그야말로 여행이 아니라 고단한 삶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이방인 혹은 이중 정체성은 절대로 낭만적인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이산은 유쾌한 ‘유목적 삶’이 아니라 고통과 소외로 점철된 신산함이고, 개인을 넘어서는 사회 역사적 문제였던 것이다”고 말했다.

   
국경 없이 유입되는 이 이주민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평가가 달라져야 함은 물론이다. 재외동포의 작품을 읽은 최근 경험은 우리 문학의 새로운 미래와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게 했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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