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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인사이드 소설가 ○○씨 /배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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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7-26 19:30:03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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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소설가 길남 씨는 자신의 책으로 좌담을 나누는 행사에 참여했다. 과외 선생이나 족발 판매의 일상에서 잠시 나와 모처럼 소설가다운 행보를 펼친 그는 무척이나 자신을 늠름하게 여기던 차였다. 그런데 좌담회가 끝나갈 무렵 받은 질문이 그를 삐끗하게 만들었다.

“작가님, 다음 책에는 부산 어디를 또 살피고 쓰실 생각이세요?”

책이 부산을 소재로 한 로컬 에세이였기에 나온 질문이었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가슴이 갑갑함을 느꼈다. 그는 나풀대는 울렁증을 이기지 못하고 이런 대답을 하고 만다.

“죄송하지만 저는…, 향토사학자가 아니라 소설가입니다. 다음에는 소설을 써야겠죠.”

사실 책의 성격상 잘못된 질문도 아니었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기에 길남 씨의 생뚱맞은 반항은 모처럼의 독자와의 만남을 화기애매한 현장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었었다. 물론 예의 그렇듯 “하하하!” 하고 뭉뚱그리며 “물론 부산 이야기도 계속 써나가고 있어요”라며 위기를 빨리 벗어났지만, 그날의 그 묘한 ‘불뚝 대답’은 길남 씨의 뇌리에서 잘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그가 며칠 전 한 영화를 보다 한 장면에서 한껏 부끄러움을 느끼고 말았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였으니 제대로 감정이입한 게 확실했다.

영화는 코엔 형제가 감독한 ‘인사이드 르윈’. 장면은 포크 싱어인 르윈이 초대받은 저녁식사 자리에서 장기자랑이라도 하듯 노래 한 번 불러보라는 요청에 노래하는 대목이었다. 르윈은 내키지 않으면서도 자신에게 친절을 베푼 교수 부부를 위해 노래한다. 하지만 불뚝 성질을 참지 못하고는 자살한 자신의 듀엣 파트에서 화음을 넣는 교수 부인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모임 자체를 망쳐버린다. 포크 싱어 르윈은 이렇게 주절거린다.

“내가 미친놈이지. 죄송하지만 안 되겠어요. 이건 내 직업이에요. 염병할 애들 재롱이 아니라구요!”

길남 씨는 가난한 예술가 르윈이 보여준 우스꽝스런 촌극이 가슴 아프다. 왜 하필이면 저런 장면에 감정이입을 하고 야단이란 말인가? 얼굴까지 벌게져서 말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얼어붙은 경제 사정이 여름을 통과하며 사람들에게 실감 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길남 씨가 일하는 마트 즉석조리코너에서조차 매출이 뚝뚝 떨어지는 판에, 가뜩이나 경제적 사정에서 자유롭지 못한 예술가들의 사정은 오죽하겠는가? 공연과 축제가 중지되고, 문화 예술 인프라 구축은커녕 단기적인 면피용 정책만 남발되는 현재 모습에 쓴웃음만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19 따위는 생각지도 못했던 작년 봄, 길남 씨는 SNS에 이런 글을 올려서 지탄(?)을 받았었다. “가난한 작가는 즐겁게 견딜 수 있지만, 가난한 가장은 슬프게도 견디기 힘들다.”

그렇게 힘들었는데…, 1년 하고도 절반 정도를 고생 고생한 지금 길남 씨는 또다시 작년의 그때로 돌아갈지 모르는 위기에 봉착했다. 왜 남들처럼 살지 못하고 문학이란 놈한테 미쳐 이런 꼬라지로 있는 것이냐? 심지어 족발까지 열심히 썰었는데 말이다…. 그는 이렇게 자책하다 늦은 점심 자리에서 소주를 시키고 말았다. 소주 한 잔을 들이켜고 보니 눈앞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국에 구운 가자미까지 8첩 반상이 차려져 있다. 그 와중에 호박 갈치찌개 접시가 슬며시 놓인다. “이거 옆에 손님 안주로 나가는 김에….”

그놈의 ‘가난 가난’ 소리내며 돌아가는 사정이야 그렇거나 말거나, 구서시장 영천식당의 6000원짜리 정식은 사장님의 정으로 잔칫상이 되어가는 중이다.

내 지금 이 모습은 기필코 소설에 넣고 말리라…. 한국판 ‘인사이드 르윈’을 떠올리며 주인공을 소설가로 할지 가수로 할지 잠시 고민하는 길남 씨. 갑자기 이런 생각도 든다. 가난한 가장일지라도 열심히 견디다 보면 ‘즐거운 작가’는 기본으로 될 수 있는 법 아닌가? 하하하!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가슴 한쪽이 뿌듯해진다. 그래, 이거 소주 한 잔 감이군. 안주로 씹은 계란 묻힌 빨간 소시지의 향이 길남 씨의 일탈을 더욱 뿌듯하게 만드는 중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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