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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칼럼] 삼각 교수대와 황금 요강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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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7-23 19:28:41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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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중복이라 날씨가 후텁지근하다. 이럴 땐 시원한 바닷바람 맞으며 옛날이야기 듣는 것도 피서의 한 방법이다. 나도 옛이야기 하나 하려고 한다. 한 오백 년쯤 전에 라파엘이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이 나라 저 나라 여행하며 세상을 배우려고 했다.
그림=서상균
그가 한여름에 런던을 찾았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근처 시장에서 사과를 하나 사서 바랑에 넣고 걷다가 꺼내 먹으려는데 없었다. 도둑맞은 것이었다. 조금 더 가다 보니, 빵을 훔친 도둑이 도망치고 주인이 쫓고 있었다. “아하, 런던에 좀도둑이 많구나! 이곳 삶도 팍팍하구나” 하며 좀 더 걷다 보니까 사람이 잔뜩 모여 뭔가를 구경하고 있었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교수대가 있었다. “무슨 일이오?” 구경하고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그는 옳다 싶은 듯 큰 소리로 답했다. “나는 변호사 일을 하고 있지만, 도둑질하는 놈들은 가차 없이 모두 교수형에 처해야 해요. 이런 준엄한 조치는 왕이 참 잘 내린 것이오.” 옆에 있던 청년이 끼어들었다. “그렇게 많이 목을 매달아도 도둑이 줄기는커녕 더 늘어나는데요.” 변호사라는 사람은 시큰둥하게 답했다. “그건 참 묘한 일이지.”

청년은 계속했다. “그것도 빵을 훔쳤다가 사형된 도둑이 점점 많아지잖아요.” 라파엘은 놀라서 되물었다. “그런 좀도둑도 교수형 감인가요?” “그럼요! 요즘 사형수는 거의 그런 사람들이에요.” 청년은 광장 한가운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교수대 보이죠? 저건 그냥 교수대가 아니라고요. ‘삼각 교수대’거든요. 목줄을 더 많이 달기 위해 통나무를 삼각형으로 연결한 거예요. 한 번에 스무 명씩 매달 수도 있어요.”

라파엘은 형 집행을 차마 볼 수 없어 그곳을 빠져나왔다. 런던다리 위에서 홍수로 불어난 템스강의 성난 강물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무엇이 묘하단 말인가. 도둑을 다루는 이 방법은 처벌로는 너무 가혹하고 억제책으로는 매우 비효과적이지 않은가. 가벼운 절도죄는 사형을 받을 만큼 나쁜 짓이 아니며, 또 그들에게 양식을 얻을 방법이 훔치는 길밖에 없다고 한다면, 아무리 엄벌을 가해도 절도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 영국인들은 학생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학생에게 매질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무능한 교사 같다. 가공할 처벌을 가하는 대신, 모든 사람에게 생계수단을 마련해주어, 아무도 처음엔 도둑이 되고 다음에는 시체가 되는 절박한 필요에 봉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지 않을까.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고 계시오?” 단정한 차림의 영국 신사가 그 옆에 서 있었다. “아…뭐, 지금 이 강물이 백성의 심사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건 나도 동감이오.” 그러고는 신사는 이렇게 제안했다. “하지만 더 나은 세상도 있다오. 나와 함께 그곳에 가보시겠소?” 이리하여 라파엘은 토머스라고 자신을 소개한 신사와 함께 하늘을 나는 마차를 타고 그의 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마차는 바퀴까지 황금으로 돼 있었다. 놀라는 라파엘을 보고 토머스가 말했다. “우리나라에는 황금이 흔합니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섬나라였는데, 광안리 같은 해변에는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진주, 홍옥, 황금구슬을 갖고 노는 것이 아닌가. 부모가 밥때라고 부르니 아이들은 갖고 놀던 것을 그냥 놓고 가버렸다. 보물을 주워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좀 큰 아이들도 본척만척 했다. 그들은 모래성을 쌓으며 놀았다. “너희들은 이런 것을 갖고 놀지 않니?” 라파엘의 물음에 아이들은 깔깔 웃어대며 “아저씨, 그런 건 다섯 살 때나 갖고 놀았어요”라고 답했다. 토머스가 설명을 붙였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혹시 외부에서 온 손님이 금반지나 진주목걸이 같은 패물로 치장하고 있으면 놀려대요. 유치하다고 여기니까요.” 라파엘은 얼른 금반지 낀 손을 감췄다.

토머스는 라파엘을 안내하면서, 이곳 사람들은 무역으로 막대한 금은보화를 축적해 놓았는데, 그것은 전쟁 등 비상사태를 대비해 공적으로 일부 보관하고, 나머지는 아무도 욕심을 내는 사람이 없기에 나라 곳곳에 방치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들의 집에 들어가 보니 식기와 컵 같은 일상용품은 황토나 유리같이 값싼 재료로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매우 정성 들여 아름답게 제조된 것들이었다.

반면 요강같이 불결한 용품은 대충 황금덩어리로 만들어졌고, 오물통에는 보석이 박혀 있었다. 범죄자들은 오히려 금목걸이와 귀걸이를 차고 있었다. 성범죄자는 순금 발찌를 차고 있었다. 최고의 흉악범은 아예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박힌 금관을 쓰고 있었다. 한 마디로 이 나라 사람들은 ‘황금 보기를 돌같이 여기도록’ 어릴 적부터 습관 들어 있었다. 라파엘은 생각했다. 이들의 삶 자체가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으니 가능한 일이겠지.

눈치챈 분도 계시겠다. 라파엘의 이야기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나오는 일화를 각색한 것이다. 오백 년 전 모어는 현실사회를 비판하면서 ‘더 나은 사회’를 구상했다. 당시에 이미 나라의 문제에 대해 ‘의지적 접근’을 할 것인가, ‘구조적 접근’을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이는 지금 우리의 고민이기도 하다.

물론 국가 행정을 맡은 정부는 ‘정책적 의지’가 있어야 개혁을 하고 새로운 과업을 이루어낼 수 있다. 그러나 의지로만 정책을 밀어붙이려는 경향 또한 경계해야 한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이런 문제에 봉착해 있다. 정책적 의지를 뒷받침하는 것은 구조적 접근이다.

부동산 정책에서 근본 구조는 물론 국토균형발전이다. 누구나 다 잘 아는 이유다. 기존 이득에 눈먼 사람들은 이 근본 구조를 무시하려고 한다.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이 문제를 도외시하는 것은 ‘직무유기’이자 ‘배국(背國)’이다. 인간 삶의 기본 조건인 의식주에 연관한 재화를 투기 대상으로 삼는 것에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 동시에, 어려운 과제이지만 근본 구조에 관한 논의를 진지하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 흔히 잘못 인식하고 있지만, 이것은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당장 급하고 중요한 문제이다.

철학자·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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