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0일 20대 국회의 마지막 숙제로 남아있던 일명 과거사법과 부마민주항쟁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그중 부마민주항쟁 관련법은 종래 일정대로라면 2020년 6월 말 최종적인 진상조사보고서를 제출해야 했을 터인데, 새 개정법안의 통과로 조사기간이 1년 연장되어 최종 보고서는 2021년 12월에 나올 수 있게 되었다.

2014년 10월 출범한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가 진상 규명 작업을 마무리하기에 앞서 지난해 말 국회와 협의하여 조사기간 1년 연장을 골자로 하는 개정안 발의를 추진한 것은 그동안 관련자 및 일부 사건 조사에서 미흡한 점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부마민주항쟁의 정치사적 위상이나 성격과 관련하여 깊이 짚어봐야 할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마민주항쟁 과정에서 일어난 주목되는 사례 가운데 하나로 당시 합동수사단이 부마민주항쟁 참가자와 주동자들을 이른바 남민전과 엮으려 했던 사건이 있다. 남민전은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민족해방을 내걸고 조직된 비밀결사로 1979년 10월 모든 조직원이 검거되면서 유신 말기의 최대 공안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당시 수사당국은 부마민주항쟁의 주도 세력을 남민전 사건과 엮어 부마민주항쟁과 관련된 반정부세력을 발본색원하겠다는 야만적 공작을 기획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사당국이 남민전을 부마민주항쟁의 배후 조직으로 엮으려는 시도는 10·26사건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즉, 당시 합동수사단은 야당 정치인과 종교계 인사까지 포함된 부마민주항쟁 배후 인물 체계도까지 만들어놓고 항쟁의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고문과 인권유린 등 강압 수사를 진행 중이었다. 아마 10·26사건이 없었고 그래서 수사가 계속 진행되었더라면 얼마나 더 많은 무고한 사람이 피해를 입었을지 모를 일이다.

남민전 배후 조작 공작은 실패로 끝났으나, 이후 제3 공화국 전두환 정부하에서도 간첩조작 사건 등 국가권력에 의한 유사 공안 공작은 되풀이되었다. 심지어 1987년 제3 공화국의 붕괴 이후에도 노태우 정부하의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을 비롯하여 불과 수년 전 드러난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 등 독재정권의 공안 조작으로 상징되는 유신의 그림자는 좀처럼 쉽게 근절되지 않았다.

이러한 와중에 며칠 전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 5부는 유신정권의 긴급조치가 ‘통치행위’라는 이유로 국가의 배상 책임 범위를 크게 좁힌 양승태 대법원의 판단과 배치되는 항소심 판결을 내놓았다고 한다.

이 판단의 요지는 ‘긴급조치 선포와 그에 따른 수사 및 재판, 형의 집행 등에서 불법성의 핵심은 긴급조치 자체라며 수사 과정의 불법행위가 입증되지 않더라도 국가는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유신정권의 긴급조치하에서 발생한 부마민주항쟁과 관련하여 긴급조치의 불법성을 인정한 것이어서 특별히 주목된다. 사법부 내의 이러한 변화는 부마민주항쟁의 성격 및 헌법적 논의와 관련해서도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1987년 이후 한국 사회의 큰 변화를 새 헌법에 어떻게 반영해야 할 것이냐를 놓고 많은 논쟁을 되풀이해왔다. 그중에는 부마민주항쟁을 비롯한 한국 현대 4대 민주항쟁의 정신을 헌법 전문에 반영하는 문제도 포함되어 있다. 사실상 1987년 전후에 일어난 우리 사회의 큰 인식 변화 중 하나는 국가권력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적 차원의 과거사 청산 작업을 거치면서 국가권력과 국가폭력에 관한 일반의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유신정권의 긴급조치에 대한 판례의 변화도 그러한 인식 변화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72돌 제헌절에 때맞춰 유신 시절 정치적 탄압을 받았던 인사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유신청산민주연대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신헌법이 불법 무효임을 선언하고 유신청산특별법 제정을 요구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유신청산이야말로 부마민주항쟁의 핵심 구호였던 만큼 유신헌법의 불법 무효를 밝히는 것 또한 부마민주항쟁의 진상 규명 작업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헌법 개정 문제가 여야 간의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으로 권력구조 개편 논의만 되풀이하다가 결국 정부안마저 제대로 검토하지 못하고 무산된 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다행인걸까, 지난 17일 국회의장이 제헌절 기념 연설에서 개헌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개헌 논의에 불을 댕겼다.

이 기회에 부마민주항쟁을 포함해 이른바 4대 민주항쟁의 정신을 헌법 전문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에 대해서도 더욱더 활발한 논의와 성과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홍순권 동아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