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2월 박정희 대통령은 서울시 연두순시 자리에서 놀라운 내용을 밝혔다. 새 행정수도 건설을 구상 중이라는 거였다. 수도권 과밀화 해결, 그리고 휴전선에 가까운 서울의 안보문제를 이유로 내세웠다. 이듬해 연두회견에서도 재차 강조하며 ‘계획수립 중’임을 내비쳤다. 실제로 당시 전담팀이 후보지를 물색한 끝에 충남 공주군 장기면을 이전 부지로 삼고 설계에 들어갔다. 그러나 1979년 10·26사태와 신군부 집권세력의 자료 폐기 등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행정수도는 수도권의 여러 기능 중 정치·행정 부문만을 수행하는 걸 뜻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행정수도를 건설·이전한 사례가 많다. 미국의 워싱턴DC를 비롯해 캐나다의 오타와, 호주의 캔버라, 브라질의 브라질리아,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 등이 그것이다. 독일은 동·서독 통일 직후인 1991년 수도를 본에서 베를린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터키의 경우 1600년 동안 수도였던 이스탄불에서 지리적 중심지인 앙카라로 수도를 바꿨다.
요즘 우리 정치권에서 행정수도 이전이 핫이슈로 떠올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20일 국회 연설을 통해 제기하면서다. 청와대와 국회, 서울·수도권에 남아 있는 중앙부처 모두를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로 옮겨 행정수도를 완성하자는 말이다. 2004년 노무현 정부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추진하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부딪힌 이래, 16년 만에 행정수도 이전의 불씨가 되살아나는 듯하다. 여권이 마치 약속이나 한듯이 핵심 의제로 띄우려는 분위기여서 더 그렇다.
이를 두고 각 진영의 반향이 뜨겁다.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은 우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부동산·집값 정책 실패에 성난 민심을 무마하기 위한 여권의 국면전환용 카드가 아니냐는 얘기다. 하지만 통합당 내부에서도 행정수도 이전론과 그 추진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온다. 수도권 과밀 해소의 원칙과 당위성에 공감하니 당연히 그럴 터다.
아무튼 분명한 것은 수도권 초집중화와 국토 불균형 발전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점이다. 행정수도 이전도 어디까지나 그 연장선에 있다. 하지만 단순히 행정수도를 옮기는 것만으로 다 해결되기는 어렵다. 수도권 블랙홀은 무엇보다 중앙집권체제에 근본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획기적인 자치분권과 함께 정부·공공기관 등을 전국에 분산하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마땅하다. 행정수도 완성이 자칫 수도권의 외연을 확장하고, 새로운 집중을 초래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