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기업은 새로 직원을 잘 뽑지 않았다. 공장은 돌아가는데 어떻게 사람을 안 뽑을 수 있을까. 그 비결은 ‘사내하청’에 있다. 정규직 근로자가 하던 일을 ‘외주업체’에 맡기고, 그 외주업체 근로자가 정규직 근로자가 하던 자리에서 똑같은 일을 한다. 이렇게 하면 사람을 안 뽑아도 공장은 계속 돌리는 마법을 부릴 수 있다. 물론 이런 식의 우회적 근로자 사용은 법이 금한 불법 파견근로에 해당하지만, 기업들은 이를 ‘도급’ 또는 ‘사내하청’이라 불렀다.
우후죽순 생긴 사내하청 업체의 근로자는 거의 2000년대 이후 취업시장에 나온 젊은 층으로, 현재 연령대는 대략 20~45세 정도다. 이들의 임금은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대기업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다.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옆자리 형님은 대기업 직원, 젊은이는 하청(협력업체) 노동자라서다. 생산물량이 줄면 하청업체는 도급계약을 해지당하고, 젊은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는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이고 고용은 한없이 불안하다. 그래서 하청 ‘비정규직’이라 불린다.
사내하청은 공장 밖에도 있다. KTX 승무원은 한국철도공사의 외주업체인 코레일관광개발 근로자다. 고속도로 영업소 직원도 한국도로공사가 아닌 외주업체 근로자다. 여름철 에어컨을 설치하는 기사도 삼성, 엘지 직원이 아니다(그나마 지난해 삼성전자는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로 직접 채용했다). 직접 채용하는 경우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직군을 신설해 계약직으로 뽑고는 정규직보다 임금을 적게 준다.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동종·유사근로자와 임금차별을 하는 건 기간제법 위반이지만, 직무가 어지간히 유사하지 않고서는 “동종·유사근로자”로 인정을 잘 안 해준다. 사실 정규직 간에도 직무는 천차만별임에도 이런 점은 가볍게 무시된다. 어쨌든 계약직(비정규직)의 직무가 다르다며 임금차별은 정당화된다.
사내하청, 계약직 등 비정규직의 낮은 임금은 본래 사용자의 편의 때문에 생겨났다. 임금은 적게 주고, 해고는 쉽게 하기 위해서다. 노동법상 사용자가 아니니 노동조합이 생겨도 상관없다. 단체교섭 의무도 없고, 파업하면 그 업체와 계약을 해지하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이의를 제기하는 근로자는 별로 없다. 정규직 근로자는 ‘스펙’에 따라 경쟁채용을 했으니 그만큼 대접받는 게 당연하고, 비정규직은 그런 스펙도 없으니 차별받아도 할 말이 없어야 한다는 게 이유다.
사실 원래라면 모두 경쟁채용으로 입사해 똑같이 ‘대접’받아야 했다. 그런데 그걸 뚝 잘라 반만 대접해주고 반은 차별했더니 근로자끼리 알아서 차별을 정당화했다. 이제라도 이상한 차별을 멈추고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하니 기존 정규직이 거세게 반발한다. 무임승차, 불공정 논리다. 취업준비생까지 합세했다. 내가 취업을 못 하는 건 내 노력이 부족한 것도, 일자리가 모자라서도, 기업이 신규 투자는 안 하고 땅투기에만 골몰해서도 아니다. ‘노오력’도 없이 정규직 일자리를 차지하는 비정규직에게로 갈 길 잃은 모든 분노가 쏠린다.
이 이상한 문제의 답은 이미 노동법에 나와 있다. 계약직 근로자는 2년이 넘으면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한다(기간제법 제4조 제2항). 무기계약직이 아닌 정규직이다. 기간제법 입법 당시 ‘무기계약직’이라는 용어도 생소했다. 정부도 “알바도 2년 일하면 정규직 된다”고 홍보했다. 기존 정규직과 같은 집단적 근로조건이 적용돼야 함이 원칙이다.
사내하청 근로자는 파견법 위반 소지가 높다. 전문지식·기술이 필요한 일부 업종 외에는 파견이 금지돼 있다. 그래서 금지된 파견은 ‘사내하청’ ‘사내협력업체’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 실질이 파견인 사내하청 근로자는 원청이 직접 고용해야 한다(파견법 제6조의2 제1항). 근로조건은 동종·유사업무를 하는 근로자 수준이어야 하지만(파견법 제6조의2 제3항), 원칙적으로 정규직 근로조건이 적용됨이 타당하다. 현 정부가 진행 중인 정규직 전환은 노동법 취지를 준수하려는 것뿐이지 무슨 특혜를 부여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자회사를 세워 직접 고용을 피해 가는 방식이 노동법을 우회하는 탈법행위에 해당할 뿐이다.
김두현 변호사·법무법인 여는, 금속노조법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