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등반 개척기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프랭크 스마이드는 1900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14세 때부터 등산을 시작한 그는 알프스에서 활약하다 1930년 국제 캉첸중가 원정대의 영국 대표로 참가하면서 히말라야에 진출한다. 이듬해 에릭 십턴과 함께 인도의 카메트(7756m)를 초등했는데, 이는 당시 인간이 오른 가장 높은 산이었다. 이어 영국이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초등하기 위해 조직한 원정대에 세 차례나 참가한 그는 1933년 당시 인류의 최고 도달 높이인 8560m까지 무산소로 혼자서 올랐다. 1차 대전 이후 세계에서 가장 강인하고 훌륭한 등반가 중 한사람으로 평가된 스마이드의 진면목은 등반활동보다도 그의 저술에서 나타난다. 그는 49세라는 짧은 생애에 등산과 관련한 27편의 다양한 책과 사진집을 남겼다. 1935년에 쓴 ‘산의 영혼’은 그의 대표작인데, 법정 스님은 이 책을 읽고 그를 ‘산을 걷는 명상가’라고 이를 정도였다.
그의 글은 요즘 나오는 산악 도서처럼 등반 과정의 사실적 묘사에 치우친 등반 보고서 성격이 아니다. 등반하면서 동료와 나누는 교감이나 산의 아름다움과 산행의 묘미 같은 산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담았다. 자신이 해왔던 등반 방식은 물론 당시 등정 위주의 등반에 대한 회의와 반성이 담겨 있는 그의 글은 심오하다. 그래서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뜬구름 잡는 얘기를 하는 건 아니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 ‘꽃의 계곡’은 뛰어난 산악인이자 식물학자이며 저술가이기도 한 그가 쓴 ‘산 책’이자 ‘꽃 책’이다.
1931년 카메트 원정 때 중앙 가르왈 히말라야에 있는 분다르계곡의 아름다움에 빠진 그는 6년 뒤 그곳을 다시 찾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난다데비에서 카메트에 이르는 일대의 산군에서 넉 달간 등반하고 식물을 탐사하며 행복하게 지낸 산사나이의 기록을 담은 책이 ‘꽃의 계곡’이다. 그가 ‘꽃의 계곡’으로 이름 붙인 분다르계곡은 후일 그 이름을 따서 ‘꽃의 계곡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스마이드는 앞선 원정에서 바쁘게 산을 오르내리느라 제대로 눈에 담지 못했던 놀랍도록 아름다운 고산식물을 기록하고 사진기에 담았다. 여기서 그는 서두르지 않고 때때로 휴식하며 주변, 즉 자연을 찬찬히 둘러볼 것을 권한다. 오로지 등반을 목적으로 해서 바쁘게 다니다 자연의 정수를 놓치는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책에서 ‘짧은 휴가를 얻어 그 기간에 오를 수 있는 모든 산봉우리를 오르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만일 (등산에서 빠트릴 수 없는 당연한 부분인) 휴식을 게을리한다면 사색을 게을리하는 것이고, 결국 자연의 참모습을 알 수 없게 된다’고 꼬집었다.
그의 이 말은 그와 동시대에 히말라야를 비롯한 고산을 찾는 산악인들에게 한 것이지만, 100년 가까운 시간과 수천 ㎞의 거리를 뛰어넘어 오늘날 우리 땅의 산악인과 등산동호인에게도 전해주는 바가 크다. 요즘 온라인에 넘쳐나는 글들을 살펴보면 1년 동안 얼마나 많은 봉우리를 올랐는지를 과시하거나 얼마나 빠른 속도로 산길을 걸었는지를 자랑하는 일이 흔하다.
부산의 숱한 등산동호인이 주말마다 금정산 고당봉을 오르기 위해 범어사를 거쳐 가지만, 입구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등나무 군락이 있다는 걸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1966년에 제176호로 지정됐으니 그 역사도 오래다. 5월 초면 굵은 나무를 감은 등나무마다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구름 모양을 이루고 진한 향기를 퍼트린다. 정상을 오르는 길에서 걸음을 늦춰 단 열 발짝만 벗어나도 소중한 자연의 선물이 우리를 기다린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어디에나 크든 작든 ‘꽃의 계곡’이 감춰져 있다. 이를 보고 말고는 자연의 참모습을 찾고자 하는 각자의 마음에 달렸다.
스마이드는 ‘등산의 묘미란 마치 포도주를 음미하듯 천천히 접근해야만 그 진수를 맛볼 수 있다’고 했다. 서둘지 않고 서서히 자연 속으로 스며들어 산을 느끼고 산과 자연과 하나 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바쁜 걸음을 늦추고 때로는 천천히 걸으며 산들에게 둘러싸여 산을 보고 듣고 냄새 맡으며 산과 자연과 하나 되는 산악인만이 맛볼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자 ‘특혜’를 누려보자.
홍보성 산악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