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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부산시장 체크리스트 /이노성

판 커진 내년 보궐선거

정치철학·나이·큰 포부, 젠더의식 등 갖췄는지 체크리스트 만들어서 시대 맞는 후보 뽑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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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음, 정직이라고 합시다.” 최근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설이 나오는 A의 참모와 나눈 대화다. 부산시정을 이끌 철학이 ‘정직’이냐고 되묻자 뜸 들이던 그는 “고민하겠다”고 말꼬리를 흐렸다. ‘사람 사는 세상’이나 ‘저녁이 있는 삶’과 같은 담백한 슬로건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한숨이 목까지 차 올랐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생을 마감하면서 내년 보궐선거 판이 커졌다. 대법원이 16일 이재명 경기지사의 상고심에서 사실상 무죄를 선고하지 않았다면 판이 더 커질 뻔했다. 김경수 경남지사의 재판이 ‘진행형’이라는 점은 여전히 여권엔 부담이다. 서울과 부산 유권자는 1140만 명에 달한다. ‘보궐’을 뛰어넘는 전국 선거가 8개월 앞으로 다가온 셈이다.

미래통합당 ‘선수’들은 출발선에 섰다. 부산시장 후보군인 이진복·유재중·유기준 전 의원은 운동화 끈을 고쳐맸다. 전호환 전 부산대 총장이 ‘결심’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허남식 전 부산시장의 참모 그룹을 흡수하려는 물밑 경쟁도 치열하다.

아직은 관망 중인 후보군은 상대의 집중 견제를 받는다. “이언주 전 의원은 조직이 약하다” “(탈당 전력이 있는) 김세연 전 의원을 당원이 용서하겠나” “서병수 의원은 출마 명분이 없다. 당선 몇 개월도 안돼 사퇴하면 유권자들이 뭐라고 할까” “박민식 전 의원은 20·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했다. 이미 경쟁력에 대한 심판이 내려졌다” “교수들이 현실정치에 발을 딛는 순간 녹아 내릴 것이다” “여의도를 10년 넘게 누비고도 인지도가 너무 낮다”….

집권 여당은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선출직이 중대한 사건으로 직위를 상실해 열리는 재·보궐선거에는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당헌 때문이다. 당헌을 개정하면 ‘정치 퇴행’의 길을 선택했다는 뭇매를 맞을 수 있다. 중량급 인사들이 애매모호한 화법을 구사하며 입조심 하는 이유다. 대신 “선거운동 카운트다운 기준일은 추석”이라는 데는 대부분 동의한다.

기자는 입길에 오르내리는 정치인과 그 측근을 만나면 몇 가지 체크리스트를 꺼낸다. 1번은 정치 철학에 대한 질문이다. 정직뿐 아니라 ‘신뢰’나 ‘잘 사는 부산’이라는 답을 듣기도 했다. “시대가 당신을 요구하고 있느냐” 또는 “당신이 만나는 사람이 당신의 철학에 동의하느냐”고 고쳐 묻자 누군가는 “매일 수 십명을 만나는 건 내 편이 안 되면 최소한 적은 만들지 말기 위해서”라고 했다. 정치 물정 모르는 우문에 현답이 돌아오자 무릎을 쳤다.

둘째 질문은 나이. “3040에게 기회를 주고 싶지 않은가”라고 하면 “경험이 부족하다”는 방어벽을 친다. “핀란드 여성 정치인 산나 마린은 지난해 34세로 총리가 됐다. 일본 오사카부 지사인 요시무라 히로후미는 45세”라고 하면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는 70대”라고 맞받는다. ‘당신의 뇌가 젊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엔 “아침저녁으로 운동한다”는 동문서답이 돌아올 때도 있다.

세 번째 질문은 ‘더 큰 꿈’이다. 출마설이 나오는 대다수 정치인은 부산시장을 ‘마지막 무대’로 꼽는다. “당선되면 변화보다 ‘이대로 쭉~’일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민선 초대 문정수부터 오거돈까지 대권을 노린 부산시장은 드물었다. 꿈이 작으니 국가경영에 반영해도 괜찮을 정책도 보기 어렵다. 부산시정의 역동성이 떨어지는 이유를 여기서 찾는 전문가도 많다.

고인이 된 박 전 시장은 싱크탱크인 서울연구원 조직을 크게 키웠다. ‘청년수당’ ‘제로페이’ ‘강남 개발이익 공유’가 모두 서울연구원 검토를 거쳐 탄생했다. 김경수·이재명 지사가 한 발 앞서 재난기본소득 도입을 정부에 촉구한 것도 ‘국가’를 염두에둔 포석이다. 반면 오거돈 전 시장은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기 전인 지난 3월 “선별적 복지에서 보편적 복지로의 전환에는 연구가 필요하다”며 재난기본소득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꿈이 크면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어젠다를 선점하려 한다. 그렇지 않은 정치인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 뒤에 숨는다.

넷째 질문은 젠더 의식. “캠프나 참모진 중 여성 비율은?” “돌봄·가사를 포함해 여성의 보이지 않는 노동을 줄일 대안은?” 농담처럼 “에어컨을 켤 때 여성이 남성보다 추위를 더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기도 한다. 마지막 체크리스트는 관찰이다. 비서들의 의전에 익숙해 있지 않은지, 사적인 모임 때는 직접 운전하는지 ….

영국 보수당의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을 이끌었음에도 노동당의 클레멘트 애틀리에게 패했다. 시대가 달라지면 지도자도 새 환경에 맞는 인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제 두어 달 지나면 보궐선거 레이스 가 뜨거워질 것이다. 나만의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시대정신에 적합한 후보를 골라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편집국 부국장 nsl@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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