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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길을 잃는 법이란 없다 /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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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7-16 20:24:35
  •  |  본지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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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단안 망원경을 하나 샀다. 산행할 때마다 엉뚱한 길로 가는 일이 다반사여서, 표지판 찾는 데 도움이 될까 하고. 이번에 ‘진안 고원길’을 트레킹 하면서도 그랬다.

14코스부터 시작해 역순으로 걷던 중 13구간을 지날 때였다. 진안과 장수 접경의 유원지로 이름난 가막천을 따라 걷다 가막교를 건넜다. 여기선 장수군 천천면으로 가는 지방도와 고원길이 얼마간 접속하는지라 도로를 따라갔다. 한데 500여 m를 지났는데도 근처에 안내판이나 표식 리본이 보이질 않았다. 큰 도로이니만큼 조금 더 가면 표지판이 나오겠지 하고 걸어갔지만 마찬가지였다.

이상하다, 싶어 가막교로 되돌아왔다. 거기서부터 다시 좌우를 찬찬히 살핀 후에야 아스팔트 도로가 아닌, 시멘트로 된 왼쪽의 마을 길이 먹재 방향이라는 조그만 표지판을 봤다. 이미 왕복 2㎞가량을 헤맨 뒤.

먼길이나 초행길에서만 그랬던 게 아니다. 부산 근교의 영남알프스 등산길은 자주 다닌 곳이다. 한데도 달포 전 간월산에서 배내봉 방향으로 간다는 게 전혀 엉뚱한 길로 갔으니까. 그날따라 평소와 달리 이상한 임도가 나오더니만 낯선 봉우리가 앞을 가로막는 게 아닌가. 배내봉 등산로에 무슨 임도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위성 지도를 찾아봤으나 산봉의 표식이 나타나질 않았다.

어쨌든 계속 가보지 뭐. 흐린 날씨에 오후 일곱 시를 지나고 있었지만 이름도 모르는 봉우리로 곧장 향했다. 숲으로 둘러싸인 정상에 올라 나무에 걸린 명판을 보니 ‘영남알프스 석정봉’이라 적혀 있었다.

여기가 어디쯤인지를 더 찾아 헤매며 알아본바, 배내골 사슴농장을 둘러싸고 있는 산봉우리였다. 간월산 표지석을 끼고 오른쪽 등산길을 따라가야 배내봉에 닿는데 무턱대고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간 결과였다. 그때도 왕복 2킬로미터쯤을 헤맸지 아마.

내가 길을 많이 헤매는 데는 부주의한 탓도 있겠지만, 시각장애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면도 있다. 시력이 양호하면 웬만큼 먼 거리에서도 안내판이나 표식 리본을 쉽게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그게 망원경을 산 이유였다.

한데 인터넷에 올라온 산행 후기를 보노라면 시력이 정상인 사람도 길을 헤맸다는 글들이 무수하다. 사실이지 어디 산길에서 만이랴.

우리는 너나없이, 또 자주 다니던 길에서도 엉뚱한 길로 가거나 행로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종종 한다. 비단 시력 문제가 아니어도 딴 길로 가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한눈을 팔았든 어쨌든. 그러고 보면 수고를 얼마나 더 하느냐의 차이일 뿐, 길을 헤매는 건 누구에게나, 그리고 언제라도 생길 수 있는 일임은 분명하다. 나 역시 망원경을 가졌다고 하여 이후론 길을 헤매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바로 이 지점에서 ‘길을 잃었다’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정말로 길을 잃은 적이 있는가? 우리가 소위 잃었다는 길은 습관적으로 다니던 길이나 표식이 되어있는 길에서 벗어났다는 뜻이지, 실제로 각자가 길을 잃은 건 아니다. 왜냐하면 벗어난 길이나 엉뚱한 길도 선입견으로 각인돼 있거나 표지판 상의 행로에서 볼 때 그런 것일 뿐, 그 길 역시 각자가 새롭게 경험하는 길이거나 개척한 길이기 때문이다. 기존 보행길이나 어떤 코스를 따라가지 않았다 해서 길을 잃은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런즉 우리 앞에 놓인 모든 길은 잃는 게 아니라 새로운 체험을 해볼 기회를 준다. 기존 길을 가느냐, 여태까진 몰랐던 길을 가느냐. 자기 의지로 선택해서 가느냐, 어쩌다 현실에 부닥쳐 마지못해 가느냐는 다를지라도. 중요한 건 현실에 부닥쳐 엉뚱한 길로 갔든, 자신의 의지로 새로운 길을 터면서 갔든, 기존 관념과는 다른 길로 갔을 때가 무엇을 발견하거나 경험상 얻는 이득이 더 크다는 점이다.

나부터가 그렇잖은가. 고원길 코스에서 벗어나 장수군 쪽으로 가는 바람에 신기마을과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를 통칭) 버스 노선을 알았고, 간월산에서 딴 길로 가는 바람에 석정봉을 알았으니. 설혹 잠시 헤매다가 되돌아온 경우일지라도 이때는 헤맨 경험치가 그 길에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므로 각자에겐 새로운 길이 된다. 직접 한번 느껴보라지.

매일 다니는 길도 날마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거나 뭔가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 역시 새로운 길인 것을. 그것이 직업의 길이든 학문의 길이든 인생길과 같다고 보면, 결코 길을 잃는 법이란 없다. 살아있는 동안 자신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이 길 아니면 저 길로 가야 하는 체험 과정이 반복적으로 일어날 뿐. 어쩌면 그것이 풍부한 인생을 살기 위해선 수고를 마다하지 말라는 신의 가르침인지는 모르겠다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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