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권리라는 말은 아직 낯설게 다가온다. 낯설게 느껴진다는 것은 문화적 권리가 일상화되지 못했음을 말한다. 문화적 권리가 현실적 담론이 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8년 12월 10일 유엔 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되었다. 이 선언에서 문화에 대한 권리를 공적으로 처음 제시했다. 제27조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①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며 예술을 향유하고 과학의 발전과 그 혜택을 공유할 권리를 가진다. ②모든 사람은 자신이 창작한 과학적, 문학적 또는 예술적 산물로부터 발생하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을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

이 선언이 있었지만 그 후로도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 신장을 위한 구체적 실천사항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국제연합은 1966년 12월 19일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발표하고 모든 국가가 서명하도록 했다. 이 규약 15조에는 ⒜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 ⒝ 과학의 진보 및 응용으로부터 이익을 향유할 권리 ⒞ 자기가 저작한 모든 과학적, 문학적 또는 예술적 창작품으로부터 생기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의 보호로부터 이익을 받을 권리를 제시했다.

1986년 6월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에서 열린 림부르흐 회의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의 이행을 결의한 림부르흐 원칙’을 채택했다. 핵심이 된 사항은 문제의 규약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범위였다.

이렇게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가 다년간 국제적 논쟁 주제가 됐지만, 문화적 권리의 범주는 법률적 내용이나 구체적 실행에서 가장 덜 논의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문화적 권리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낮고 논의가 부족하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1990년대 이전까지 문화적 권리 문제는 다른 권리, 특히 정치·경제·사회적 권리에 비해 주장하기가 쉽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냉전 구도 속에서 ‘문화적 권리’는 ‘경제발전’이라는 현실적 과제와 사회적 권리 신장에 묻혀버렸다.

또한 문화의 특성상 문화적 권리를 설정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한 이유가 됐다. 사회적 쟁점이 되려면 대중이 쉽게 수용할 수 있는 개념적 명료성을 지녀야 하는데, 문화적 권리는 그런 명료성을 결여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1년 유네스코 제31차 총회에서 ‘세계문화 다양성 선언’이 발표되고 난 뒤부터 문화적 권리에 대한 인식은 다른 차원으로 진전됐다. 이 선언 5조에는 “문화적 권리는 인권의 필수적 구성 요소로서 보편적이고 불가분적이고 상호의존적인 성격을 띤다. 창조적 다양성이 활성화되려면 ‘세계 인권 선언’ 제27조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 협약 제13조와 제15조에 명문화된 문화적 권리가 완전하게 이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연유로 국내에서도 정치·경제·사회적 권리 실현에만 집중됐던 시선이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문화가 우리 일상에 미치는 영향과 가치가 그만큼 중요하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 중 하나가 2005년 ‘기본 인권으로서의 문화적 권리’를 규정한 민간인 중심으로 추진된 국내 최초 ‘문화헌장’ 발표이다. 이후 시민의 문화적 권리를 선언하는 ‘시민 문화헌장’을 제정하는 선으로 나아갔다.

충청북도가 국내 지자체로는 처음 2009년 ‘충청북도 문화헌장’을 선보였다. 2016년 서울시가 ‘서울 시민문화권 선언’을 했으며, 인천과 몇 지역에서 ‘시민 문화헌장’ 논의가 지속된다. 부산시도 광역시로는 처음으로 ‘부산시민 문화헌장’ 초안을 마련해 시민 의견 수렴에 들어갔다. ‘부산시민 문화헌장’에 어떤 문화적 권리목록을 작성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지만, 아직 낯설게 느껴지는 문화권리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는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권리가 천부적이긴 하나 인간이 적극적으로 그것을 인식하고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인권을 제대로 향유하지 못한다. 문화적 권리도 마찬가지다. 부산 시민의 문화권을 상징하는 ‘부산시민 문화헌장’ 만들기에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이유다.

남송우 부경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