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연예계는 이순재의 전 매니저가 부당한 업무 지시와 대우를 받았다고 밝혀 발칵 뒤집혔었다. 그는 매니저 업무 외에도 이순재 가족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으며, 추가 근무 수당도 받지 못하고 일하다가 부당하게 해고당했다고 주장했다. 64년간 올곧게 연기를 해왔으며 젊은이들과도 소통을 잘 하고 많은 이의 존경을 받던 이순재의 갑질 논란은 그의 이미지를 일순간 무너지게 할 수 있었다.
이순재는 지난 5일 직접 쓴 입장문에 “자신에게 철저하고 타인을 존중해야 한다는 오랜 제 원칙을 망각한 부덕의 소치였음을 겸허히 인정한다”며 “전 매니저와 통화하며 그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공감했으며 사과를 전했다. 전 매니저가 언론에 제기한 내용이 맞고 그분께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한다”고 밝혔다. 그의 글 속에 진솔한 사과와 입장이 담겨 일련의 사건은 진정됐다.
그런데 지난 8일 방송된 tbs FM ‘김규리의 퐁당퐁당’에 출연한 이순재는 “이 자리를 빌려서 사소한 일로 잠시 물의를 빚은 데에 대해서 죄송하다는 말씀 올린다”고 말해 사과의 진정성에 의구심이 들게 했다. 문제는 ‘사소한 일’이라는 표현이다. ‘사소한 일’이 가리키는 것이 1주일간 연예면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상황을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전 매니저에게 행했던 부당한 일을 말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적절한 표현은 아닐 터다. 특히 전 매니저가 겪은 일을 ‘사소한 일’로 치부했다면 앞서 밝힌 사과는 진정성을 잃을 것이다. 혹시 ‘과거에는 매니저들이 아무 말 않고 다 했던 일인데 왜 전 매니저만 유난을 떠는가’라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그리고 갑질 논란을 일으킨 연예인이 이순재가 아닌 젊은 배우였다면 이렇게 빨리 방송에 출연했을까?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에 출연 일정이 잡혔다 해도 취소하고 자숙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이순재는 지난해 10월 EBS 2019 가을 역사 다큐멘터리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사회는 많은 갈등이 내재해 있다. 지역 이념 계층 갈등이 있지만 구시대적이다… 젊은 청년들은 새로운 사고로 새로운 세계관 인생관을 갖고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고 보완한다. 잘 사는 미래를 건설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청년들에게 당부하던 그의 말에 공감됐는데 지금은 공허하게만 들린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