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대 초반부터 전원생활을 꿈꾸며 살았다. 내 집은커녕 전셋집을 전전하던 시절이었다. 겨우 콧구멍만 한 내 집을 장만하고 세 아이를 키우느라 전원생활에 대한 꿈은 저 멀리 별빛 속에 묻어 두고 살았다.
그렇게 도시에서 아등바등 살다가 50대 후반이 되어서야 아담한 시골집을 마련했다. 몇십 년을 근검절약하고 살아온 덕분이었다. 시골집이 있는 곳은 대낮에도 노루가 나온다는 밀양 노루실 마을이었다. 시골집을 사고 나니 마음이 바빠졌다. 하루라도 빨리 전원생활을 하고 싶어서 좀이 쑤셨다.
그 무렵, 해운대에서 학생이 100명이나 오는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허파에 바람이 들어갔는지 큰 고민하지 않고 옮기기로 했다. 해운대에서 밀양까지는 89킬로미터나 되어 출퇴근은 무리였다. 기차를 타고 다닌다면 충분히 가능했다. 기차역을 찾다보니 화명동이 눈에 들어왔다. 아내는 큰 반대는 하지 않았지만 아마 반대를 했더라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원생활을 해볼 거라고 잔뜩 기대하고 있던 참이라 그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테니까.
결국 화명동에서 밀양까지 출퇴근을 하게 되었고, 낯선 동네에서 학원을 새로 열어 학생을 한 명부터 모으기 시작했는데 1년이 지나도 30명이 넘지 않았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면 허겁지겁 달려가서 기차를 타야 했고, 밀양역 앞에 대어 놓은 차를 타고 시골집으로 들어가면 밤 8시가 넘었다. 그때서야 밥과 반찬을 해서 혼자 먹었다. 저녁 먹고 설거지한 다음에 방 청소까지 하고 나면 잠이 쏟아져서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삶이기 망정이지 남이 시켜서 했다면 펄쩍 뛰었을 것이다. 어떤 때는 나 자신도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 정원과 텃밭을 한 바퀴 돌아보면 참 행복했다. 싱그러운 공기 속에서 철 따라 피고 지는 꽃을 보면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출근할 시간이 되면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와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저녁이 되면 시골로 들어가는 생활을 반복했는데, 그 생활은 5년을 조금 넘기고 끝이 났다. 세 아이를 대학 보내느라 모아 놓은 돈을 다 쓰는 바람에 시골집을 팔아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도 하고 싶던 전원생활이 그 정도로 끝나는가 보다 했다. 하지만 쉽사리 포기하지는 않았다. 시골집 판 돈의 일부를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다가 부산시 변두리에 작은 텃밭을 장만했다. 나 혼자라면 벌써 두메산골로 들어갔을 것이다. 아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시 끝자락에 붙어 있어야만 했다. 비록 시골집은 아니지만 하우스를 지어 놓고 주말마다 오가며 전원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노루실에 들어갈 때는 돈키호테처럼 잘 나가던 학원을 느닷없이 접는 바람에 수입은 반에 반 토막이 나버렸지만 결코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진돗개를 키울 수 있었고, 노루실 저수지의 아련한 물안개를 종종 보았으며, 뽕나무와 느릅나무 같은 약나무가 지천이어서 건강차를 마음대로 끓여 마실 수 있어서 좋았다. 정원에 피어나던 이쁜 꽃들, 무공해 나물과 채소, 밀양강 둑에 촘촘하게 피어나던 달맞이꽃, 집만 나서면 좋아하는 산이 즐비하게 널려있어 입맛대로 골라가던 산길….
자신이 꿈꾸는 일에 도전을 해서 잃는 게 있더라도 하고 싶은 일은 해봐야 한다. 잃는 게 하나 둘이면 얻는 것은 열 스물도 넘는다. 돈을 많이 번다고 경험까지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때 시행착오를 겪으며 많은 경험을 쌓았기에 지금은 한층 더 편안하게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생업에 지장을 받으며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도시에서는 돈이 생활의 전부지만 시골로 눈을 돌려보면 큰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아파트나 빌딩이 삶을 꼭 풍요롭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소쩍새 우는 호젓한 산골에서 가지나물에 오이냉국을 반찬으로 호박잎 쌈을 싸먹어도 나만 좋으면 그만이다. 행복은 큰것에만 깃들어 있지 않고 작은 것에도 소담스럽게 숨어 있다.
도시에서나 코로나가 근심거리지 외딴 산골에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 숲에서는 필수품인 마스크가 산과 들로 나가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전원으로 어서 들어가라고 코로나가 자꾸만 등을 떠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재원 동화작가